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eldon Jul 15. 2024

미국 직장인 vs 한국 직장인 (이직)

직장인 현실



미국 직장인 6년. 한국 직장인 1년.


나도 어느덧 7년 차 직장인이 됐다.


미국에서는 광고 대행사에 다녔다. 시카고, 뉴욕에 있는 광고 대기업에 다녔었기 때문에, 워라밸은 나쁘지 않았고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미국 물가를 생각하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 정도로 벌었고, 평범한 직장인 정도로 일했던 것 같다.


글로벌 광고 캠페인을 만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일 같았다. 20대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다 일해봐야 한다고 믿었다. 구글, 페이스북, 넥플릭스 등의 IT 기업은 회사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드는 광고가 희귀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나 못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말 그대로 직업뽕에 취해서 살았다. 광고인이 아니라면 무시했다. 광고인 중에서도 광고 제작 직군이 아니라면 진짜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정말 콧대가 높았고, 자아도취의 삶을 살았다. 20대의 패기라고 하기에는 다소 건방졌던 것 같다.



미국에선 직업뽕 vs 한국에선 직장뽕


미국에서는 내 일에 빠져 살았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할까?


'광고는 옷 입고 하는 일 중에 가장 재밌는 일이다.'라고 믿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일이라고 믿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1000명도 안된다고 믿었다. 그만큼 희귀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잘해야만 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자신감이 넘치다는 말은 좋은 말이고, 사실 건방지고 가소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건방지고 가소로운 태도가 계속 이직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믿었고, 뉴욕에서 일하는 게 진짜 성공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진실로 믿었고, 그런 나르시시즘이 실제로 이직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내 삶에 빠져 살고 싶다. 


한국에서는 남들이 알만한 기업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 일이 전부였던 시기가 지났다고 할까? 내 삶이 전부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앞서기 시작한 것 같다. 내 삶이 전부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워라밸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큰 회사에 다니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웃기게도, 남들이 알만한 기업일수록 내 삶을 가지기에 유리한 것 같다. 연봉이 높지 않더라도 괜찮아졌다. 내 취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내가 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30대 중반이 돼서, 나르시시즘이 없어져버린 걸까? 아니면, 30대 중반이 돼서 더 이상 젊은 날의 패기가 사라져 버린 걸까? 삶의 가치를 두는 부분이 참 많이 바뀌게 된 것 같다.



미국에선 워라밸보다 글로벌 브랜드. 글로벌 브랜드보다 광고제 수상.


미국에서는 무조건 더 좋은 작업을 만들 수 있는 회사였다.

 

일이 먼저였고, 워라밸보다 이름 있는 브랜드. 이름 있는 브랜드보다 자랑스러운 작업(광고제 수상)이 먼저였다. 연봉과 워라밸, 회사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작업을 만들어서, 내 명성을 높이고 싶었다. 그래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굴지의 회사를 가는 게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작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한국에선 연봉보다 복지. 복지보다 워라밸. 워라밸이 곧 내 삶.


한국에서는 무조건 내 삶이 먼저다.


직장인으로서 버는 돈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직장인 월급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말에 공감하게 됐다. 사업가가 되지 않으면, 돈으로는 계급 상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면, 사업가가 돼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가라니... 너무 리스크가 큰 일 아닌가? 사업가를 하려면 워라밸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처음 몇 년간은 돈도 못 벌 것 같다. 돈도 못 벌고 워라밸도 없는 삶이라니... 그게 무슨 삶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20대의 패기를 사업가에 올인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다시 20대 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살고 일하는 삶을 선택할 것 같긴 하다. 난 돈보다는 경험, 내 삶을 특별하게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내 특징이 한국에서는 내 취미, 내 가족과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게 된 것 같다.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워라밸을 제공받을 수 있는 회사가 내 이직의 제일 중요한 기준이 됐다.



한국에선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팔아볼까? 시야가 넓어지는 망상.


적당한 연봉과 복지 그리고 적당한 회사 이름 + 워라밸이 있는 삶. 이 공식에 맞는 삶을 살게 되면 시야가 넓어지고 삶의 밀도가 생기기 시작한다. 취미를 가지게 되고, 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다.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발굴해서, 소셜 미디어에 홍보를 해볼까? 그렇게 사업가가 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하기 시작한다.


점점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다고 착각한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착각은 월급쟁이로서 영원히 사는 게 답이 아니란 걸 깨닫는 걸 의미한다. 회사가 이윤을 내는 방식을 파악하고 구조를 이해한다. 구조를 이해하면, 5명 이 어느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내 월급보다는 많이 벌 수 있다는 망상을 시작하게 되고, 내 능력이면 스타트업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망상이 커지기 시작한다. 친구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정신 차려."라는 말을 듣는다. 친구가 감각이 없다고 여긴다. 그렇게 매일매일 망상에 빠진 채로 살게 된다.



미국에선 이직이 결정되지 않으면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미국에선 다음 직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이직은 항상 비자 스폰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미국 비자가 합격하는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6개월의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직을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절대로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않았다.


한국에선 이직이 결정되지 않은 채 회사를 그만두고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사실 직장인 생활을 당장 그만두고 이직을 시작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었다.


단언컨대, 자신감에 그런 짓을 한 건 아니다. 그냥 내가 살고 싶으니까 책임감 없이 그만뒀다. 그냥 너무 힘들어서, 못 버티겠어서 그만뒀다. 약하다고 하더라도, 무시를 당하더라도... 내 삶이 없다고 느껴지니,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졌다. 내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고, 사는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변한 내가 무서웠다. 다시 나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회사를 당장 그만둬버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심리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받지 못했다. 그만두자마자 심리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 2주 정도 쉬면서 심리치료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직을 시작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당장 직장인 생활을 그만두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해선 안된다.


운 좋게도, 회사를 그만두고 3주 뒤에 재취업에 성공하고 다시 직장인이 될 수 있었다. 그냥 정말 운이 좋았다.


무직자로 지냈던 근 1달 동안 정말 두려웠다. 재취업이 될까? 시장이 정말 좋지 않은데 가능할까?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 와중에 연봉이 높더라도 워라밸이 보장이 되지 않는 회사는 재꿨다. 미친놈 같겠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연봉이 낮더라도, 직급이 낮더라도, 워라밸이 보장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이직의 기준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동시에,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일은 내 자신을 돌보고 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이라는 것.


내 삶의 가치관이 변했다. 더 이상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지 않게 됐다. 건방지게 살지 않기로 했다. 광고를 만드는 일은 서포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회사의 매출을 책임지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마음이 가벼워졌다. 겸손하게 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되새기려 노력한다.


결국에 일은 내 삶을 살게 하고, 내 취미를 하게 하고, 내 가족을 먹여 살리게 하는 수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내 삶을 살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이 전부인 삶을 사는 게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배웠다. 늦었지만 그래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AI를 활용한 광고 (기술과 광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