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를 추억하며
신랑과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명동교자를 참 사랑한다는 것이다. 원래 칼국수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명동교자의 칼국수는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진한 육수가 내 입에 딱 맞았다. 신랑의 소중한 평일 연차에 우리는 종종 명동교자에 들른다. 평일 점심에도 대기줄이 참 길지만, 나나 신랑이나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빨리 홀에 입장할 수 있다.
운이 좋게 6인용 좌석에 노부부 한쌍과 의자를 사이에 두고 합석하였다. 4인용 좌석에 앉게 되면 정말 모르는 분과 나란히 앉아 먹어야 하는데, 여기 오는 그 누구도 거기에 불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왁자지껄함과 꿀꺽꿀꺽 육수를 넘기는 소리와 후루룩 면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맛있게 먹고 서울을 여행온 여행객마냥 쇼핑도 하고 사진도 찍다가 커피는 어디서 마셔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이제 가을도 저물어 가고 단풍도 끝자락인데 남산을 가볼까 하다 신랑이 먼저 묻는다.
"명동까지 왔는데 학교에 가볼까요?"
좋아요, 라고 답한 나는 오래도록 소식을 전하지 못한 교수님들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살짝 주춤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라고 말하기엔 내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나이를 먹어서라는 생각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연락드려야 할 분들께 연락을 못드려서, 이제 연락을 드리려니 너무 쑥스럽고 죄송하다는 말에 신랑이 입을 연다.
"10년 전, 여보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어느 날 전화해서 선생님 잘 지내셨냐고 묻는다면 여보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정말 반가울 것 같아요. 고맙구요."
"교수님들도 여보와 같은 마음일 거예요. 제자들은 그런 존재예요."
춥고 좁았던 마음이 따스하고 넓어진 기분이었다. 교수님들께 전화드릴 용기가 막 생겼다. 학교에서 우연히 교수님을 마주쳐도 반갑게 인사드릴 수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녹두 사거리에 차를 대고, 후문을 향해 걸었다. 쫄순이가 맛있던 분식집은 사라지고 그 곳엔 스타벅스가 입점해있는 대형 주상복합이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 중국집 강서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학교 맨 위에 위치한 상록원 옆쪽으로 남산으로 통하는 야트막한 산길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10월 16일부터 12월 10일까지 공사중이란다. 어쩌지 고민하는 나에게 신랑이 다른쪽 길이 있다며 가보자고 한다. 충무로역 주변에 이토록 낯선 동네들이 가득했다니. 새로 생긴 중구노인요양센터 맞은편, 나무로 된 무장애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내가 가고 싶던 남산 공원 산책로가 펼쳐졌다.
신랑과 연애 초반, 벚꽃이 가득한 그 길에서 찍었던 사진속의 싱그러움이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의 젊음이, 막 시작한 연애감정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이 나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는 바닥이 자주색 페인트였는데, 지금은 초록색이고, 바싹 말라붙었던 개울은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다. 학교에서 연결되는 산책로 입구에 가 보았다. 나무로 된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학교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으니, 20살 그때의 나에게로 한 발씩 더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 뭉클했다. 이룬 거 없는 20대라고 생각했지만, 넘어지고 일어섰던, 웃고 분노하고 즐거웠고 창피했던 그때의 내가 있어, 조금은 뒤를 돌아볼 줄 아는 40대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 계단을 덮고 있던 먼지 풀풀 나는 흙마저도 20년 전 그대로인듯. 가을의 끝무렵에서 잊었던 그때의 나를 만나 참말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