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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Aug 22. 2019

일어나다

상처와 치유의 사이에서

유독 하루가 길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시간은 청개구리 같아서 소중한 시간은 짧고, 건너뛰고 싶을 때는 교과서처럼 세세하게 설명하며 울리지 않는 쉬는 시간의 종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였다.

   

"분명 짐을 들고 있었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일어난 그의 눈앞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왼쪽손목에는 주삿바늘이 꽂혀있고 그것을 따라 행거에는 수액이 걸려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신경보다 앞서 도착한 고통들은 그의 사고를 흐리게 하였다. 생각하면 고통이 한번, 다시 생각하면 다시 고통이 한번. 그렇게 고통은 그를 괴롭혔고 그는 필사적으로 다시 생각했다. 고통을 헤집고 들어간 기억 속에서 그는 짐을 들고 있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하던 그의 시야는 중력이 찍어 누르듯 급히 땅으로 꺼져갔다.

"아, 결국…."

결국 예견된 일이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고통은 어느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하늘은 더욱 얄궂게 그를 찍어 눌렀다. 어떻게든 이를 물고 버텨왔다. 이렇게 쓰러지지 않노라고 몇 번을 다짐했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과 대화하며 오늘을 버텨냈던 그였다. 하지만 얄궂은 하늘은 시험을 채점하는 감독관처럼 그를 냉철히 떨어뜨렸다.

조용한 병실, 남자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마주했다. 그저 누워있었고 움직일 수 없었고 고통에 이렇게 굴복하는 자신의 의지를 원망했다. 하늘을 원망했다. 그렇게 원망에 원망을 쌓아 마주한 하늘에는 자신이 있었다. 원망의 끝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의 마음은, 그의 하늘은 세상과 단절된 채 계속해 높은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볼 수 없는 태양을 동경하는 것도 아닌데 야속한 하늘은 조금씩 가까워 질 때마다 그에게서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이렇게 중력으로 끌어내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눈앞에는 원망이 쌓여있고 자신은 가장 밑으로 추락해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마음은 고립 되어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마주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원망의 끝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빛에 드리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익숙한 그림자가 원망의 끝에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려오고 있었다. 고립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발자국 하나가 일으킨 파문이 그의 마음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반가운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파도에 발자국이 젖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파도가 일어날 때마다 종아리, 허벅지, 계속해서 그를 적셔나갔다. 파도가 온몸을 적시며 얼굴을 뒤덮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의 손에 있는 주삿바늘이 닻을 내려 사내의 출항을 막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깊은 땅속으로부터 닻을 뽑아냈다. 그의 출항을 목격하기엔 병실은 지나치게 조용했고 어두웠다. 그의 눈앞에 원망의 끝에서부터 내려온 이들이 있다. 그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깊은 땅속으로부터 여러 것들이 흘러넘쳤다. 한 방울씩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사랑, 추억, 그리움, 오랜 시간 잊고 지내왔던 감정들이었다.

그의 뒤로 애틋한 감정들이 흔적을 남기며 그의 항해를 축복해주었다.


그는 하늘과 풀잎이 파랑과 초록에 물들어 있는 것을 본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보았어도 보았다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서 끊임없이 원망을 쌓아왔었다. 지금 그의 눈앞엔 원망도 파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에나 느껴봤을 법 한 풍경은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따뜻함이 불어오는 곳엔 작은 꽃들을 든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눈이 부셔 보이지 않지만 반가움만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원망의 끝에서 내려왔던 사람, 그가 어디에 있던 항상 따라 와 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익숙했고 반가웠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달렸다. 달리고 달려 따뜻함과 마주했고 다시 그 사람의 손을 쥐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유독 하루가 길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시간은 청개구리 같아서 소중한 시간의 감성은 짧고, 건너뛰고 싶은 순간은 마치 교과서처럼 세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듯한 감상을 주곤 하였다.

흥미를 잃은 얄궂은 하늘은 떠났다. 교과서 같은 하루를 넘겼다. 그는 다시 혼자였다. 빈 방에 홀로 누워있었다. 습관처럼 무언가를 쌓으려던 그였다. 그때, 항해를 시작하며 뒤따라온 그리운 감정들이 그의 왼쪽손목에서 아우성쳤다. 반대의 손으로 왼쪽손목을 감싼 그가 위로했다. 다음 페이지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써야할지, 그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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