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동 Aug 22. 2019

사계

당신에게 계절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절에 서식하던 나의 꽤 오래된 감정도 그것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색이 변해가고 있었다.


사계의 색이 저마다를 뽐내며 자랑할 때에는 어릴 때부터 서식하던 나의 것이 그것을 동경하며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나의 시간은 사계의 흐름을 따랐고 매년 찾아오는 그것에 대해 반갑게 맞이하며 추억하고 기억할 것이라 다짐했다. 그리고 함께 오는 고유 계절만의 향을, 색을, 음을 떠올렸다. 쉬운 일이었다. 늘상 찾아오는 손님처럼, 지나치게 친절한 그들에 맞춰 내 몸과 마음은 늘 준비하며 시달렸지만.


매미와 낙엽이 함께 떨어지며 작은 발자국을 환영하던 날. 사계의 흐름에 따라 추억에 시달리기를 몇 해 반복하며, 때에 따라 다른 환영방식을 만들어야만 했던 나의 그것은 조금 지쳐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는 저마다 너무나도 다른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봄과 가을의 우울증이 심해져 마음 언저리에서 항상 돌아가니 여름과 겨울 손님만이 북적였다. 이를 의식한 그것은 늘 불만이었고 아직은 조금 이른 시기에 가을을 환영했다.


아직 봄이 한창 피어날 무렵에는 사계의 구분은 애국가와 같았고 그것을 느낄수록 벅차올랐다. 봄이 서서히 질 무렵부터 사계의 흐름을 타고 여러가지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꽃잎, 피어나는 풀잎.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 봄은 우울증에 빠졌고 벗어나지 못했다. 봄이 지고 여름이 깨어야 할 시기엔 여름잠에 빠져 지각한 여름 대신, 가을이 먼저 타올랐다. 황금의 계절, 추수의 계절이라며 칭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뻣뻣하지 못한 목을 치켜 세웠다. 억지로 세워 만성 디스크가 생긴 가을은 짧은 시기 타올라 사라질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며 심상에 빠져 버렸다.


모든 것을 태워버려 소강한 가을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잠에서 조금 일찍 깨어난 여름은 짜증낼 틈도 없이 흘러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먼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정리를 시작했다. 화끈하거나 냉정하게.


여름은 한동안 오래 자리를 잡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름보다도 훨씬 많은 잠을 요구하는 긴 겨울을 대비하여. 그는 사계의 흐름에 적응하며 파악했다. 여름은 흐름에 따라 계절을 맞이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때로는 그것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봄과 가을에 대해선 발벗고 나가 환영하기도 했다. 아직 어렸을 봄과 조숙했던 가을은 서서히 어른이 되어갔다.


사계의 흐름 속에서 봄과 가을은 여전했지만 그것의 방식은 조금씩 변해갔으며, 조금은 빠르거나 느렸던 관계들을 맞춰가고 있었다. 날씨의 변덕에 봄의 단풍과 초록의 고추잠자리를 보게 되어도 전혀 망설임 없이, 나만의 계절로써.


그렇게 계절에 서식하던 나의 꽤 오래된 감정도 그것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색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어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