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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 Mar 01. 2022

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든다

문뜩 떠오르는 생각들

0.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점점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점차 줄어간다고.



1-1. 어릴 적엔 허름한 포차의 분식을 좋아라 했다. 오뎅 육수에 들어 있는 게껍딱이나 간장통에 담긴 커다란 양파며 사과 덩이들이 괜히 더 맛을 좋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순대는 모두 맛있었다.


2-1. 유년기의 나는 '변신!'만 외치면 저마다 빨 파 초 등의 타이즈와 마스크를 쓰는 전대물을 좋아했다. 이들은 정의로웠고 상대는 악했다. 심지어 징그러운 외형에 스스로 '악의 무리'라 칭하기도 주저치 않았다. 이 세상만큼 흑백의 구도가 선명할 수는 없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대한 구분이 그토록이나 명료함에야.



1-2. 나이가 들며 점차 다른 것들을 알게 됐다. 그 게껍딱이 포차의 공동창업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간장통 속의 양파와 사과 덩이들이 며칠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을, 오뎅 꼬치가 세척되지 않은 채 돌려 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순대 내장이 어떤 꼴로 들어올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2. 그런데 살아보니 세상은 전대물의 그것과 꽤 달랐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는 촌지로 유흥업소를 드나들고, 수많은 신도를 이끄는 종교인은 신의 이름으로 성폭력을 일삼았다. 나라를 지킨다는 군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 어느곳도 밝게 반짝이기만 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반짝이는 만큼의 그늘이 있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미와 추를 더이상 내 머리로 구분할 수 없었다.



1-3. 그런 동시에, 또 다른 것들도 보였다. 그 포차 아주머니의 딸도 포차의 음식들을 먹는 것을, 마칠 즈음이 되면 그 작은 체구로 홀로 감당해야 할 뒷정리 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리고 어느 날이면 포차 아주머니의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 있는 것을.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혹은 그 이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2-3.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히만이 그렇지 않던가. 집에서는 인자하던 아버지가,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처리'할지 궁리하던 사람이란 이야기는, 이제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렌트는 답을 말한다. '자유의지가 있는 이상, 아이히만은 유죄'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겐 아렌트처럼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지성도, 이성도, 자신도 없다.



3. 유치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이건 수학 문제와 같은 것이다. 덧셈, 연립방정식, 행렬, 대수를 지나 미적분을 거쳐, 어느덧 더이상 내가 손도 댈 수 없는 수학 문제를 만난 것처럼, 나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어졌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면 생각은 있을지 모르되, 말할 수 없어졌다.  나는 점차 할 수 있는 말을 잃어간다.



4. 다시금 말하되, 이 이야기는 온전히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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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 번의 시도 만에 완성되었다. 별것 아닌 잡상, 심지어 재미도 없고 어두침침한 이야기인데, 누가 기분 좋게 읽겠냐며 몇 번이나 쓰다가 지웠다. 하지만 결국 이 글을 완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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