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꿈의 경계 탐험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리챠드 파인만은 "파인만 씨 농단도 잘하시네요"라는 책에서 최면과 관련한 체험을 소개했습니다. 그 책에는 존경받는 교수님이 라스베이거스의 극장에서 춤추는 무희들과 놀던 야단 스런 이야기나 술집 화장실에서 취객들과 강펀치를 교환하던 이야기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말하지 않는 것이 본전인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그의 책은 아인슈타인이 양말을 안 신고 다니던 소탈한 패션과 더불어 적어도 과학자라면 체면을 무릅쓰고 자신의 온갖 지저분한 이야기도 탈탈 털어 말하는 과도한 정직함이 필요하다는 강박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그가 말한 최면 경험은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당연히 최면에 걸리지 않았지만 최면에 걸린 것 같은 연기를 하면서 최면술사와 최면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이상한 유대관계를 설명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을 또 책을 열어 확인해 봐야 합니다. 저는 아주 빈약한 기억력을 갖고 있어 이런 것이 두뇌 한편에 그림자처럼 스치면 그저 저의 생각대로 이렇게 일단 써놓고 봅니다)
제가 나가는 교회에는 신령한 목사님이 계셔서 기도를 하면 성도들이 뒤로 자빠집니다. 당연히 주위에 보조하는 사람이 있어서 쓰러지는 사람이 뇌진탕으로 사망하지 않도록 받쳐서 쓰러뜨린 다음 담요를 덮어줍니다. 심한 경우는 목사님이 휘익하고 바람을 내뿜으면 이층에 있는 성도들이 일제히 뒤로 자빠지는 신기한 현상이 생깁니다. 이런 강력한 필드와 운동을 유발하는 힘은 물리학자들을 불안하게 하겠죠? 저의 아내는 어쩌다 불쌍하게도 기도를 받으러 나가는 일행에 속했습니다. 목사님은 한 명 한 명 쓰러뜨리는 게 귀찮았는지 이번에도 휘익 염력을 발사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는데 딱 두 사람이 서있더군요. 물론 아내가 그중의 한 사람이었고 쓰러지기를 열망하면서 안 쓰러져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은 잊을 수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염력에 반응하지 않는 이성이 이렇게 강한 아내와 산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앞으로 아내와의 논쟁은 포기해야 한다는 강력한 각성을 했었습니다.
가끔 TV에서 최면술사들이 전생을 기억나게 한다는 최면을 거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희한한 전생을 가진 대상은 엄청난 스토리를 말하며 실제처럼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최면은 최면을 거는 사람과 피 최면자 사이에 엄청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인만이나 의심 많은 아내에게 이것이 잘 안 먹히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최면상태에서 본 것은 깨어나서 기억이 생생하다는 점은 신기합니다. 만일 최면으로 엄청난 상상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뿜어낼 수 있을까요? 최면술사와 피 최면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를 라포(rapport)라고 불렀습니다. 요즘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라포 형성의 전문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최면술사는 아니지만 그에 해당하는 정도의 신뢰와 친밀관계를 형성시켜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볼 때 최면에 안 걸리려는 생각은 최면술사를 믿을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가장 큰 것은 최면에 안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걸렸는데 이상한 소리나 행동을 해서 창피한 꼴이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더 큰 것은 안 깨어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이겠지요.. 물론 최면술사는 손가락을 딱딱 튀기기만 하면 사람을 현실로 불러내지만 말입니다. 이런 불안감은 최면술사와의 라포 형성을 방해합니다.
라포 형성이 생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거미들이 거미줄을 치고 머리를 땅을 향한 채 기도하는 자세로 먹이가 걸려들기를 바라지만 일부 몰지각한 거미는 귀찮게 거미줄을 치는 대신 발궆혀펴기를 열심히 한 나머지 엄청난 점프력을 키웠습니다. 이들을 깡충거미라고 합니다. 성질이 더러워서 일단 만나면 싸우는 탓에 일본 사람들은 조개껍질 속에 이 넘들을 잡아서 들고 다니고 모기를 잡아 먹여 독을 올려서는 거미 싸움대회를 연다고도 합니다 암튼 이 깡충거미는 다리만 잘 발달한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먹이를 확실히 발견해야 하는 탓에 엄청나게 시력이 좋습니다, 아이폰 카메라 같은 동그란 눈이 그저 보아도 네 개나 있고 숨은 작은 눈도 많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깡충거미는 이러한 최면의 달인입니다. 이들이 최면을 거는 대상은 암컷 깡충거미입니다. 이유는 그저 간단합니다. 암컷 깡충거미가 즐겨 먹는 간식이 바로 숫 깡충거미이기 때문입니다. 암컷 깡충거미를 만나는 날이면 바로 제삿날이 되는 이유로 수컷을 암컷에게 목숨을 건 구애를 해야 합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 수컷은 일단 암컷의 맘에 들기 위해 다리를 치켜들고 몽키 몽키 몽키 매직 이런 식의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그러면 암컷이 자세가 됐군 하면서 다소 마음이 풀어지는 사이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암컷은 갑자기 식욕이 당겨 깡충 튀어서 수컷의 탐스런 등에 이빨을 박고는 맛있게 냠냠 먹어치웁니다. 상황이 이러니 종족을 이어가기 위한 데이트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깡충거미는 암컷에게 최면을 걸어 잠들게 하고 재빨리 거사를 치르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암컷 깡충거미에게 몽고 남자들이 내는 기괴한 소리 비숫한 진동을 배를 부르르 떨어 일으킵니다. 이 진동 주파수로 암컷은 최면에 걸려 잠에 빠져듭니다. 최면걸기에 성공한 수컷은 잠든 암컷에게 얼른 다가가 씨낭에 씨를 넣고는 잽싸게 도망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_yYC5r8xMI
최면은 수면과 각성의 중간단계로 이해됩니다. 최면상태에서 임사체험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전생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결국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한 형태일 것입니다. 그 상상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은 신기합니다. 그러나 아직 최면상태에서 글을 쓰거나 과학적 발견을 하거나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위대한 작품은 보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생 체험과 같이 그 체험의 이미지는 너무나 현실 같은 것이어서 상상의 가치가 매우 적은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