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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ul 25. 2023

바르샤바의 짧고도 길었던 여름밤

16시간 레이오버 이야기

한국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길, 베를린과 인천 간에는 직항이 없어 나는 보통 유럽 어딘가에서 경유를 하는데 이번 경유지는 바르샤바였다. 최저가 항공을 찾다 보니 경유시간이 16시간이나 되었지만 하룻밤을 바르샤바 시내에서 보내며 작은 여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구시가지에 호스텔을 미리 예약해 놓은 상태였고, 시내에서 할 일을 하나 정해놓았을 뿐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공항에서 나왔을 때가 오후 6시쯤이었고 동유럽의 6월은 적어도 밤 10시까지는 어둠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마침 공항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왔다. 버스 티켓은 정류장의 티켓 판매기에서 살 수도 있고 버스 안에 비치된 판매기에서도 살 수 있다. 나는 버스에 타서 티켓을 사기로 하고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은 짐꾸러미를 바리바리 싸들고 탄 관광객과 시민들로 꽉 차 매우 혼란스러웠다. 버스 안에는 티켓 판매기가 한 대 있었는데 그 앞에 줄을 선다고 섰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아 줄이 어디서부터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버스는 신호에 맞춰 섰다 달렸다 하니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언제 내 차례가 올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사람들이 티켓 사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그러다 누가 내 앞에 끼어든다 싶으면 지금 우리 다들 줄 서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제지하는 식으로 함께 질서를 지켰다. 곧 내 차례가 되었고, 티켓 구매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터치스크린에서 우선 언어를 영어로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1회권을 선택한 후 카드 결제하면 되었다. 그렇게 겨우 표를 끊고 한쪽으로 비켜서서 힘들게 균형을 잡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


중국어로. 가끔 해외에서 중국인들이 다짜고짜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종종 생기는 이유는 동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중국인일 확률이 중국 인구를 따져봤을 때 실제로 높기 때문일까. 나는 못 알아듣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중년의 남성인 상대는 내 표정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은 건지, 중국어로 계속 뭐라고 했다. 나는 영어로 "중국어 못해요"와 "저 한국인이에요"이라고도 해봤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예전 한국에서 대학 다니던 시절, 교양 중국어 시간에 배운 어쭙잖은 중국어로  


"워쓰한궈."


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그제야 "아아! 한궈!"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워쓰한궈'는 '저는 한국입니다'라는 틀린 문장이었지만, 어쨌든 아저씨는 이제 내가 왜 어리바리했는지를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이해한 것이다. 그에게는 일행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에게 '이 사람 한국인이래!'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일행들은 '아하, 한궈!'라며 모두 나를 주목했다.


내가 '워쓰한궈'를 말했다고 해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건만, 아저씨는 멈추지 않고 네이티브 중국어로 나에게 뭔가를 요청했다. 종이 지도를 보여주면서 구시가지를 가리키는 걸 보니 여기에 가고 싶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거기 간다고 했더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은 버스 티켓을 사야 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여기까지 말이 통했으니 그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티켓 판매기 앞에 섰다. 아저씨와 그의 일행들은 '쎼쎼!'를 외치며 정말 기뻐해서 조금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티켓을 몇 장 사야 한단 말인가. 버스 안은 매우 복잡해서 그의 일행이 몇 명인지 얼른 파악이 안 됐다. 영어로 몇 명이냐고 물었는데 (하우 매니?) 묵묵부답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중국어 실력을 또 보여주어야 했다.


"이, 얼, 산, 쓰?!"


또 중국어가 들려오니 너무나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뭐라고 말하며 손을 들어 보였다.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즉 , 내가 중국어로 셀 수 있는 1,2,3,4 범위 밖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모양은 내가 아는 숫자를 의미했다.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펴면 전화기 비슷한 모양이 되는데, 이건 중국에서 숫자 6을 뜻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베를린에서 중국인 친구 챠챠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챠챠가 '여섯 개'라는 말을 하며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드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신기하다, 중국에선 이게 6이야? 한국에선 그냥 전화기 모양인데!'라는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걸 몇 년 후에 바르샤바 시내버스 안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정말 희한했다.


'그럼 티켓 6장을 카드 하나로 한 번에 결제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바디랭귀지로 알린 후 그들에게 티켓을 끊어주었다. 버스표를 얻은 후에도 아저씨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지 휴대폰의 번역 앱을 꺼내 들었다. (왜 이제야?) 자기들은 베이징에서 왔다고 하고, 너는 혼자 여행 중이냐, 대단하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레이오버라는 얘기까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간단한 영어 한두 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중국에서 유럽까지 자유여행을 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용기랄까 자신감이 생각할수록 재미있다.


중국인 무리와 나는 함께 버스종점인 구시가지에서 내렸다. 짜이치엔을 외치며 그들과 빠르게 헤어진 후 나는 호스텔로 향했다. 카페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느긋하게 여름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과 따뜻한 날씨, 깨끗한 거리 덕분에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호스텔 위치 역시 구시가지 한복판이라 찾아가기가 쉬웠고, 나처럼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은 여행자에겐 딱인 것 같았다.


그러나 호스텔에 도착해서 내 이름을 말하자 프런트데스크의 직원이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대뜸 사과를 했다.


"미안한데, 예약이 취소됐어. 시스템 오류가 있어서 오늘 예약한 사람들은 대부분 취소됐고 방은 이미 꽉 찬 상태야. 메일 못 받았어?"


그제야 확인해 보니 취소 메일이 체크인 당일인 오늘 오후 5시쯤 와 있었다. 나는 갑자기 잘 곳을 잃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당장 오늘밤 어디서 자야 할지 걱정이 더 컸다. 호스텔 입구에는 나처럼 예약 취소 당한 여행자가 두 명 더 있었고, 그들은 다른 호스텔을 예약하는 중이라고 했다. 스태프들은 재차 사과하며 환불은 별도로 예약했던 사이트 통해서 이루어질 거고 여기 말고 주변에 두어 개 정도 다른 호스텔이 있으니 호스텔 이름을 알려주며 거기로 가 보라고 했다. 내가 프런트데스크 옆에 서서 휴대폰으로 다른 호스텔을 찾아보고 있는 와중에 스태프들은 자기네끼리 뜬금없이 독일어를 시작했다. 나는 ’영어로 대화하던 손님을 앞에 두고 갑자기 이건 뭐지?‘하고 귀를 기울였다. 스태프 한 명이 동료에게 ‘우리 집에 오면 내 방 창문 앞에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어'라는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폴란드는 독일의 이웃국가이기 때문인지 독일어가 비교적 많이 쓰이는 것 같았는데, 폴란드에 여행 온 동양인인 내가 독일어를 이해할 거라는 생각을 못한 게 분명해 보여 굳이 독일어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별로 농담을 나눌 기분은 아니었지만 독일어로 '그럼 나도 거기서 재워주면 안 되겠니?' 했더니 깜짝 놀라는 두 얼굴.


나는 최저가 검색하고 로그인하고 블라블라 할 의욕이 전혀 없어서 그냥 구글에서 가까운 호스텔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6인 1실에 오늘 묵을 수 있는 침대가 하나 있다고 하길래 지금 그리로 갈 테니 그 침대 찜해달라고 얘기해 놓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찾아간 두 번째 호스텔은 첫 번째만큼 구시가지 한복판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룻밤 잠만 잘 곳이니 별로 상관 없었다. 큰 캐리어는 어차피 베를린 공항에 도착해 찾기로 한 상황이라 짐은 백팩 하나뿐이었지만 비로소 내 짐을 풀 수 있는 곳에 도착하자 마음이 많이 놓였다.


여성전용 6인실 침실에는 두 명이 침대 위에서 쉬고 있었다. 짐을 풀며 내 바로 아래층 침대를 쓰는 여자애에게 바르샤바에 얼마나 머무르는지 물어봤더니, 베를린에서 오늘 바르샤바로 넘어왔고 내일 또 떠날 거란다. 나는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고 한국에 갔다 오는 길이라 내일 베를린으로 돌아간다고, 베를린은 어땠냐고 물었다. 아주 좋았단다. 다른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그 말을 듣고는 대화에 끼어들어 ‘나도 베를린 좋던데, 베를린에서 공부 중이라고? 너 정말 운이 좋구나.‘라는 것이었다. 새삼 내 처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일상이 된 베를린 유학생활이 오래전 내가 꿈꾸던, 현실에 치여 이번 생애는 못 이룰 것 같다고까지 생각했던 그런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되새겼다. 이 여자애는 물론 내가 한국에서 이미 대학공부를 마치고 공무원 생활을 6년 하다 뒤늦게 독일에서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시작한 삼십 대 중반의 늙은 학생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지만.


나는 짐을 사물함에 넣고 작은 슬링백만 하나 챙겨 다시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피곤하더라도 바르샤바에서 곧장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폴란드로 날아오는 비행기에서 독일에 있는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를 폴란드에서 독일로 편지를 부치고 싶었다. 다음날이면 도착할 베를린에서 만나서 줘도 되지만, 폴란드에서 온 편지를 받는 일은 작은 서프라이즈가 될 것 같았다. 호스텔 직원에게 근처에 우체국이 있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24시간 운영하는 우체국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며 종이지도에 표시를 해주었다. 지도를 받아 들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 낯선 도시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지나친 자유가 주어진 이 시간 속에서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왠지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우체국은 도착했으나 여기서부터 난관이었다. 번호표 뽑는 기계부터 폴란드어뿐이라 어느 쪽 번호표를 뽑아야 할지 한참을 의미 없이 들여다보다 결국 옆에 서있던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목요일 오후 8시, 우체국에 볼일을 보러 온 사람은 꽤 많았다. 대기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물건이나 편지를 어떻게 부치는지 눈여겨봤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냥 멍 때리다 보니 차례가 되었다. 우선 직원에게 번호표를 주면서 영어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할 수 있다길래 편지를 독일로 부치고 싶다고 했다. 일반? 특급? 일반.


그렇게 나는 2유로 정도에 해당하는 가격의 우표를 얻었다. 그런데 직원은 우표를 주며 편지를 내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우표를 편지에 붙이고 그 편지를 받아 직접 어딘가에 보내줄 줄 알았다. 실은 창구에서는 우표 판매만 하는 것 같았고 택배상자가 아닌 이상 편지를 창구에서 수거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고맙다고 하고 물러났는데 우표와 편지봉투를 쥐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딘가에 풀이 놓여있지 않을까 싶어 대기실 공간을 한 바퀴 돌았지만 풀은 없었다. 이걸 어찌해야 되냐고 물어보려면 다시 번호표를 뽑아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친절해 보이는 또 다른 현지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영어 할 줄 아는지 물은 후, 이 우표를 붙이고 싶은데 여기 보통 풀이 있는지, 아니면 풀을 사야 하는지 아냐고 물어보니까 이 여성은 '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표 뒷면을 혀로 핥으면 보통 잘 붙어' 하는 것이었다. 아니 정말 지금 생각해 봐도 왜 침 바를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해결 방법을 제외시켰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정말 다행으로 손쉽게 우표를 붙였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우표를 붙인 편지는 어디에 넣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준) 우체통 같이 생긴 사물을 찾아 대기실과 이번엔 복도까지 한 바퀴 돌았지만 우체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오니, 이제 사람들이 내가 몇 번이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헤매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 건 플라스틱 칸막이 너머 보이는 편지더미였다. 우체국 직원들이 일하는 창구 두 칸 정도를 없애고 거기에 투명 칸막이로 바닥부터 어른 키 넘는 높이를 사방으로 막아 커다란 함을 두 개 만든 모양이라 전혀 한국의 우체통 같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앞쪽에 물건을 밀어 넣을 수 있는 입구 같은 게 보이고 그 아래엔 편지가 쌓여있으니 여기가 편지 보내는 곳이라는 게 확실해 보였다. 왜 대기시간 내내, 또 풀을 찾아 여기저기 헤맬 때 이 공간에 눈에 안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내가 폴란드어를 하지 못해 그 창구에 큰 글씨로 뭐라고 쓰여있어도 이해를 못 했던 게 문제였지만.


여기서도 또 엄청 고민됐던 건, 이 투명 칸막이가 왼쪽 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일반, 한쪽은 특급 그런 느낌이었다. 특급우편이 폴란드어 표기로 영어의 express와 아주 비슷해서 대충 거기 말고 반대쪽에 넣으면 되겠다는 감이 왔지만, 확실치 않아 아까 그 우표 사용법을 알려준 여자에게 다시 다가가 저기가 일반우편 칸이 맞는지 물어봤다. 그는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나는 폴란드어를 한 마디도 못하면서 폴란드 관공서에 와있으니 영어도 한 마디 못하면서 유럽여행 온 중국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바르샤바에서 드디어 독일로 가는 일반우편을 부쳤다.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무한대의 자유였다.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예전에 바르샤바 출신의 지인이 알려준 ‘강변에서 맥주 마시기’ 같은 것을 해 보려고 신시가지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구시가지에서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로 넘어가려다 말고 다리 위에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생각보다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고 다리도 낭만적이기보다는 차가 쌩쌩 달리는 조금 삭막한 곳이라 체력 낭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각은 이미 9시를 향하고 있었고, 결국 구시가지나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그냥 일찍 자야겠다는 지루한 결론을 냈다.


나는 어찌 보면 지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든 건, 어느 이름 모를 가게에서였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고 어떤 가게에서 파워풀한 전자음악이 들려왔다. 통유리창을 통해 음악을 연주 중인 밴드가 보였다. 여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 건물 측면으로 난 입구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봤다. 7-8평쯤 되는 공간에 객석이나 무대 같은 별다른 장치 없이 밴드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음악은 뭔가 강렬하지만 몽환적이었고 게다가 바닥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뿜어 나와 더욱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입구를 찾아 들어와 관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는 나까지 서너 명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멋지지 않아? 나도 그냥 지나가다가 들어왔는데 음악이 아주 마음에 들어.”

“응, 멋지다.”

“나 잠깐 맥주 가지러 갔다 올 테니, 잠시만.”


음악 소리에 묻혀 그의 말은 알아듣기가 아주 힘들었지만 대충 이 정도의 짧은 대화였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음악이 몽환적이고 내가 모르는 하얀 연기까지 나오는 곳에서 납치라도 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뜬금없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맥주를 가지러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 모를) 그가 돌아오기 전 나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누군가와 말을 섞고 의외의 대화를 나누는 그런 여행은, 일상의 내가 늘 바랬던 일인 것 같기도 한데 막상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귀찮아하거나 겁먹거나, 그렇게 된다.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했는데 시차 때문인지 새벽 4시에 그냥 눈이 떠졌다. 9시 비행기라 시간이 좀 남아있지만 그냥 일찍 일어나 씻고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새벽 5시의 거리를 걸으며, 화창한 햇살 아래 붉은색 바르샤바 궁전과 상아색 성 안나 교회에게 언젠가 다시 보자고 눈으로 인사했다. 바르샤바 관광지 정보가 1도 없는 바르샤바 레이오버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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