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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Oct 31. 2023

버릇없는 꼰대들의 사회

독일살이의 장점 중 하나, 이곳은 꼰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사회다. 독일은 개인주의가 강하고 누구나 자기주장이 뚜렷한 편이라 공적인 조직이든 사적인 모임이든 위계질서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말처럼 호칭과 존댓말이 발달해있지 않아 언어적으로 봐도 수직사회가 될 여지가 적다. 내가 겪은 독일의 대학과 직장에선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앞뒤가 꽉 막힌 상사, 경청할 줄 모르는 연장자 같은 캐릭터는 독일에도 분명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어느 나라든 꼰대는 존재할 것이다. 다만 주변에 있는 손아랫사람의 태도에 따라 꼰대가 가지는 파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앞서 말한 이유 덕분에 나이나 지위를 떠나 누군가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거절하는 게 상식이고,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니요'라고 말하기가 한국보다 훨씬 쉬운 환경이다. 그래서 독일에는 꼰대의 설자리가 적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대학교에서는 같은 학번, 같은 학과끼리 뭉치고, 직장에서는 같은 팀원끼리, 대도시에서는 동향끼리, 뭉치고 뭉치고 또 뭉친다. (반대로 독일에는 뭉치는 문화가 없어서 유학이나 이민 온 한국인들이 외로움에 몸서리칠 가능성이 높다.) 뭉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꼭 위계질서가 생기는 게 문제다. 나이가 많은 사람, 학번이 빠르거나 경력이 긴 사람, 돈이나 권력, 영향력이 높은 사람, 직위가 높은 사람은 발언권이 크고 나머지는 대부분 그들에게 대충 동조해 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역할에 그친다. 한마디로 어딜 가나 꼰대의 설자리가 있다. 어떤 꼰대들은 그냥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연륜이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에 때때로 억지를 부리는, 귀여운 준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병폐가 되는 수준의 꼰대란 마디로 아랫사람과 말이 잘 안 통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을 나름 정의해 보자면 이렇다.


첫째, 꼰대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는 비인간적으로 대한다. 꼰대는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다. 강자에게 저자세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약자 앞에서는 욕설도 하고 소리도 지르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고 비참한 대우를 한다.


둘째, 꼰대에게는 위계질서 자체가 진리다. 이런 마인드의 사람이 윗사람에게 잘하기 때문에 승승장구할 확률이 높은 것이 함정이고, 이 사회가 암담한 이유 중 하나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상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깍듯하게 대하고 아부하며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꼰대에게 위계질서가 아주 중요한 이유는, 아랫사람들에게 완전히 외면받아서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위계에서 비롯된 공포를 이용해서라도 자기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꼰대는 서로를 존중하며 합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누구를 만나든 서열 위아래를 따져 윗사람에겐 비위를 맞춰주고 아랫사람에겐 내키는 대로 말과 행동을 배설한다. 논리와 이성이 아닌 위계질서가 말과 행동의 방향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지침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직장 후배가 어떤 문제를 논리로 따져 들면 똑같이 논리로 반박하지 않고 연륜이나 권위로 밟는다. 똑같은 논리를 상사가 주장하면 두말 않고 수긍한다. 이 지침 없이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기도 하고 같은 상대에게 웃다가 삿대질하기도 하는 부조리상태가 된다.


셋째, 사회적 문제아로서의 꼰대는 사회 전체가 키워낸 결과물이다. 꼰대는 자기표현이 강한 아랫세대, 반박과 토론을 할 줄 아는 동료, 아부보다는 직언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윗사람이 모두 갖춰진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즉 꼰대의 존재는 그들을 오냐오냐 받아준 사회 전체의 괴상한 관대함을 나타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꼰대들은 버릇 망친 아이처럼 자기만 옳은 줄 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식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하는 부모가 아이 버릇을 망치는 일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윗사람 눈밖에 나기 싫어서 억지를 오냐오냐 받아주는 사람들이 결국 윗사람의 버릇을 망치는 일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오냐오냐해 주는 주변환경 속에서 정말 자기만 옳은 줄 아는 자세가 굳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갇히게 된다는 점은 아이나 꼰대나 다를 게 없다. 결국 망쳐지는 건 아이 또는 꼰대 본인의 인격이다.


그래서 사회 전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의 주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가 가진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채 고작 평생 익혀온 꼰대짓만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런 인간상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새로울 것 없는 일이라는 슬픈 생각도 든다. 주변에 널린 꼰대들에게 지금이라도 따끔한 훈육을 가하자. 아랫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꼰대를 배양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랫사람은 말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회식 때마다 '술 못해요'라고 거짓말했던 것을 후회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싫습니다' 했으면, 아니 아예 '회식 안 갑니다'했으면 어땠을까. 내 입에, 내 몸에 뭘 넣을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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