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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Aug 26. 2023

금붕어보다도 짧았던 우리 부부의 기억력

며칠 전 오전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산책에 나섰다. 한동안 몹시도 무더워 산책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그날은 좀 선선해진 듯했기에 산책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걷다 보니 땀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이른 아침에는 약간 서늘한 기운도 느껴졌었는데 말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목표로 했던 반환점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반환점에는 마트 하나가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마트에 들어가서 안에 껴입은 옷 하나를 벗어야겠어. 더워서 못살겠네."

   "옷 갈아입을 곳이 있어?"

   "기 화장실이 되게 깨끗해. 거기서 벗으면 돼."

아내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드디어 마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와, 살겠다. 정말 시원하네."

그리고 까먹었다. 제일 중요했던 목적을 까먹었다. 시원한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금 바깥이 얼마나 더운지에 대한 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쇼핑 계획은 없었고 그 마트를 반환점으로 하여 곧바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땀까지 흐르는 더위 속을 걷다 보니 중요한 계획 하나가 만들어졌다.

   '마트에 들어가 안쪽에 입은 옷 하나를 벗는 것.'

그런데  시원한 곳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계획을 까먹었다. 우리는 더위를 식히고자 마트 내의 제일 시원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고, 그러다 보니 쇼핑 온 것으로 착각을 해버렸다. 그랬기에 계획에도 없던 먹거리 몇 가지를 쇼핑하며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쇼핑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채 몇 걸음도 걷지 않았을 때였다. 몹시도 더운 날씨가 까먹었던 우리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벗는다던 옷은 벗었어?"

   "아차, 깜빡했네."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까먹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금붕어보다도 짧았다.

마트에 들어갔던 목적이 뭐였었더라?




이 경험은 내가 학창 시절에 읽었던 단편 소설 하나를 생각나게 한다. 방금  아내와 내가 한 행동이 그 소설의 주인공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작가는 고골리나 푸쉬킨 둘 중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은 되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누가 됐든 아주 오래 전인 200여 년 전에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소설가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고골리로 하자. 정확한 작가명은 나중에 확인해 보자.)

   '사람의 본성이란 동서고금 똑같구나. 고골리예리하네. 사람의 그런 심리를 잘 포착하여 소설을 써내는 걸 보면.'


소설의 내용에 대한 기억은 매우 흐릿하다. 다만 고골리의 의도는 명확하게 기억난다.  의도에 초점을 맞춰 대략적인 줄거리를 재구성해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던 러시아의 귀족 하나가 길가에서 벌벌 떨고 있는 한 노인을 보았다. 그 귀족은 생각한다.
   '이리 추운 날씨에 저 사람은 어디 갈 곳이 없는가 보다. 우리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이 추위가 좀 누그러질 때까지 우리 집에서 좀 쉬도록 해줘야겠다. 우선은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하면 더욱 좋겠지?'
그 귀족은 추위에 떨고 있던 그 노인을 집으로 데려갔다.
이 순간만큼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였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그 귀족은 빨리 몸을 녹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지라 자기가 데려온 노인의 존재는 까먹어 버렸다.
 
순식간에 까먹은 것이다.
 
그는 당장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기 바빴다. 얼마 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그는 따뜻한 차 한잔을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호사스러운 자기 집 거실의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웬 거렁뱅이 노인 하나가 저쪽에 앉아있지 않은가? 그는 하인에게 말한다.
   '저 놈은 웬 놈이냐? 당장 집 밖으로 쫓아내거라.'


그 귀족은 자기가 추운 벌판 있었을 때는 그 추위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 추위 속에서 떨고 있던 노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집안에 있게 되자마자  바깥이 얼마나 추운지에 대한 감이 모두 사라져 버렸고 노인을 그 추위 속으로 내쫓기까지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깥의 추위를 알았었는데도 말이다. 고골리는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도 그랬다.





이번의 경험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이 일에서 의미 있는 교훈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족 같은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의 삶, 나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교훈이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대해서 얼마나 공감하려 노력하는가?


너무 억지스러운 교훈일까? 비약이 심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내가 그리고 내가 고골리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자.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맞춰서만 단순하게 생각하는 소설 속의 귀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우리 부부는 그렇게 행동했다.


고골리는 소설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비꼬고 있다.

자신이 당하는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그렇게 당하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고골리는 소설 속에서 당시의 사회상도 풍자하고 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귀족 계급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소설 속의 귀족 계급이 혹시 나는 아닐까를 생각해 보자.

이 귀족 계급이란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젊은 세대를 이해 못 하는 기성세대일 수도 있고,

교사에게 갑질을 일삼는 학부형일 수도 있고,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못된 배우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고골리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라는 다짐들을 분명히 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그 다짐을 까먹을 것 또한 분명하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반드시 남을 배려하며 살도록 하자'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마감하는 순간 그 다짐을 까먹을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 남에 대한 배려는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끝.


2023년 8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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