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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다영 Aug 10. 2022

경리의 마음

  

  직원이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회사에서 경리직을 맡으면 보통은 부서원이랄 게 나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타 부서 직원들은 애로사항이 생기면 부서장에게 건의하고, 부서장이 의견을 취합하여 대표로 사장에게 전달했지만, 나는 그런 일을 논의할 상대가 없었다.

  나의 직속 상사는 말할 것도 없이 사장이었다.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직원들에 비해 사장과 대면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업무는 사장에게 직접 지시를 받고, 직접 보고해야 하는 일들이 태반이었다.

  사장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사장실로 호출하곤 했다. 우리는 한 부서라며 친한 척을 했다. 그들은 나를 앞에 세워두고 사적인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다른 직원들의 흉을 보기도 했다. 직원들이 사장을 험담하는 것만큼이나 사장들도 직원들의 뒷담화를 즐겼다.

  “그 직원은 목소리가 너무 커.”

  “그 여자는 옷을 왜 그렇게 입고 다니는지 몰라.”

  “걔는 실적도 형편없으면서 회사에 바라는 것만 많아.”

  사장들은 다른 직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사장의 책무로 인한 고뇌와 외로움을 내게 털어놓곤 했다. 그들도 나처럼 동료가 필요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사장을 동료로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 관계는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사장은 내게 어떤 말이든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사장에게 일이 너무 많다고, 급여가 너무 적다고 투덜댈 수 없었다. 어떤 직원은 매번 다른 이에게 은근슬쩍 일을 미룬다고, 어떤 직원은 매일 십 분씩 지각하고, 누구는 자리를 너무 자주 비운다고 함께 뒷담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장이 나를 자꾸 부르면 업무의 흐름이 끊긴다고, 당신이 퇴근 후에 뭘 하는지, 아내와 사이가 어떤지, 당신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커다랗고 말끔한 책상 앞에 서서 거의 누워 있다시피 앉아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동료와 나누는 사담이라기에는 너무 지루하고 고역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이따금 네, 네하고 대답할 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방을 나오곤 했다. 방을 나서는 내게 사장들은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끼리 한 이야기는 우리만의 비밀인 거 알지?”


  작은 회사에서 경리는 대개 인사와 총무 업무도 함께 맡는다. 근태 및 연차 관리부터, 비품 관리나 사무실 미화, 우편물 관리 등의 서무를 처리하고 사장의 개인 심부름부터 법인의 등기 변경 업무나 사무실 임대차 계약과 이전에 관련한 업무까지 방대한 일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회사는 경리직을 맡은 사람을 여타 부서에서 하지 않는 모든 일을 하는 이로 여긴다. 어떤 업무에 딱히 담당자가 없다면 그건 대개 경리의 몫이다. 가령 공용 복합기가 고장이 났을 때 사람들은 복합기 옆면에 붙어있는 서비스센터 번호로 전화하지 않고, 경리에게 말한다.

  “복합기가 고장 났으니 서비스센터에 전화해 주세요.”

  사무실의 형광등이 나가면 건물 관리실에 연락하지 않고,

  “관리실에 전화해서 형광등을 갈아 달라고 해야겠네.”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딱히 바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들이 한 달에 얼마를 받고 있는지를 알아서 나는 때때로 속이 쓰렸다.


  한때 사귀었던 남자는 제 친구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나를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었다. 그건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의 업종일 뿐이었지만, 굳이 나서서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약속 장소에 가는 동안 그가 내게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한테 명함은 줄 필요 없어. 네 메일 주소, 좀 그렇잖아.”

  그때 내 메일 주소는 다른 이들의 것처럼 이름의 이니셜이나 영문 이름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내 명함의 메일 주소는 ‘accounting@    '이었다.

 이전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부터 나는 내 메일 주소가 부끄러웠다. 내가 누구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명함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경리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재무회계팀과 경영지원팀이 분리되어있다. 메일 주소에는 이제 나의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교적 관리가 잘되는 건물의 넓고 쾌적한 사무실 안,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자리에 앉아 있다. 더는 맡은 일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호출당하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했었던, 허드렛일이라고 할 만한 그 일들을 이제는 다른 직원이 맡아하고 있다. 아직 이십 대인 그 직원은 여간해서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하고 묵묵하게 맡은 일을 한다. 그 직원을 보면서 이따금 그 자리에 있었던 나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 일하고도 보람이나 뿌듯함보다는 어떤 소외감과 모멸감, 부끄러움과 분함, 수치심과 회의감 같은 감정을 더 자주 느끼곤 했었다.


  회사에는 그런 일들을 맡아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들. 그 일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른 직원들은 불편 없이 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회사는 무탈하게 굴러간다. 내가 맡은 일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누구의 일도 하찮지 않고 당연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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