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메르주가에 있지만, 나와 Y가 머물 숙소는 하실리바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실리바드에서 내려야 했다. 어떤 정류장에서 승무원이 크게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승객들을 깨웠는데, 그 말이 하실리바드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승무원에게 하실리바드가 맞냐고 물어봤고, 승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누군가 내가 서 있는 곳 사방에 검은색 합판으로 새로운 방을 만들어 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와 Y는 ‘알리’를 기다렸다. ‘알리네 집’이라는 사하라 사막 투어를 미리 신청했기 때문에 직원의 픽업 차량이 올 때까지 멍하니 검정 방 안에 서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알리’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리를 기다리며’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결론이 조금 달랐다. ‘고도’와 달리 ‘알리’가 동네방네 자신이 ‘알리’ 임을 드러내며 지프차를 타고 도착했다는 점이 다른 부분이었다. 5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지프차를 3명의 직원과 나와 Y, 그리고 두 개의 25인치 캐리어가 꽉 채웠다. 그렇게 채워진 지프차는 30분 동안 어둠의 흔적을 묻혀가며 ‘알리네 집’으로 향했다.
사막의 공기는 페즈의 공기보다 무거웠다. 같은 모로코인데 페즈의 공기는 한국 여름의 공기와 비슷한 밀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사막의 공기는 뜨겁고 밀도가 매우 높았다. 우리가 머물 방에 들어가니 다행히 방에는 에어컨이 있었고, 방 크기도 작은 편은 아니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방을 보여주고 잠을 자러 로비로 내려갔다.
“빨리 에어컨 틀자. 더워 죽을 거 같아.”
“안 켜지는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 더위에서 잠을 자면 열사병으로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직원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직원은 리모컨을 몇 번 눌러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 방을 나갔다. 새로운 리모컨을 가져와서 에어컨을 향해 버튼을 몇 번 누르더니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정말 미안해. 에어컨이 되는 방이 있긴 한데 이미 머물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어. 침대는 두 개라 너희 둘이 한 침대를 써야 할 거야. 여기서 지낼래, 그 방으로 옮길래?”
Y와 나는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빨리 에어컨 앞으로 가고 싶었다. 이 방을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에어컨이 나오는 방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짐을 챙겨서 그 방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에어컨이 나오는 방은 또 다른 공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분명 과학시간에 찬 공기가 더 무겁다고 배웠는데, 에어컨이 나오는 방의 공기가 훨씬 가벼운 것 같았다. 그 방에 원래 있었던 사람은 누가 봐도 여행을 여기저기 다닌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세계 여행하는 사람들의 상징 같은 엄청난 크기의 배낭이 방 한구석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길쭉한 가방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차가운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옥상으로 나가니까 이질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숙소 사방이 건물 하나 없이 시야가 확 트여있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 모래 언덕들이 줄지어있었다. 언덕과 언덕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사하라 사막의 모습 그 자체였다. 숙소에서 3km만 나가면 사하라의 모래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래언덕들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비로소 배낭의 주인공과 통성명을 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글을 쓰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편의상 S라고 하겠다. S는 한국에서 관악구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난 본능적으로 그 얘기를 듣자마자 ‘서울대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학교나 학과를 밝히지는 않았다. 사실 그 방에서 통성명할 때 별 얘기는 안 했다. S가 내 예상대로 세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사막에 도착했던 때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사막 투어를 떠날 수는 없었다. 한낮에는 사막 기온이 50도를 넘어가고, 신고 있던 신발이 녹아내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사막 투어는 해 질 무렵인 오후 5시 반에 출발한다고 했다. 나와 Y는 그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내 몸은 물속에 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래사막과 모래언덕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의 부조화가 일어나 더 재미있었다. 마치 노천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눈이 내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영장 자체는 작았다. 수영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크기의 풀장이었다. 작긴 했지만, 나와 Y가 사막의 더위를 씻어내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둘이서 2시간을 쉬지 않고 놀았다. 납작한 튜브 위에 눕기도 했다가 배처럼 노를 젓기도 했다. Y와 나는 수영장에 둘 뿐이었기 때문에 K-POP을 크게 틀어놓고 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 레드벨벳의 히트곡을 다 듣고 수록곡인 ‘Oh boy’를 들을 때쯤 사막으로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다.
사막에는 모래바람도 불고 햇빛이 강해서 긴 옷과 머리를 싸맬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나와 Y는 숙소에서 모로코 전통 옷인 젤라바와 스카프를 한국 돈으로 약 2만 원 정도 되는 60 디르함에 빌려 입어야 했다. 젤라바는 다양한 색과 디자인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운 같은 큰 옷에 허리에 기모노처럼 띠를 두를 수 있는 형태였고, 가운과 띠를 골라서 직원에게 말하면, 직원이 딱 맞게 옷을 입혀주었다. 나는 사이즈만 맞으면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어서 하얀색의 젤라바와 노란색의 띠, 그리고 노란색의 스카프를 선택했다. 다행히 사이즈는 잘 맞았고, 머리에 두른 스카프 매는 방법이 조금 어려워서 그것만 다시 차근차근 배우면 바로 출발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Y는 처음에 골랐던 젤라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참 동안 옷을 골랐다. 직원과 Y 둘이서 옷을 고를 동안 나는 다른 젤라바들을 구경했다. 5분까지는 기다릴 수 있었다.
“이건 어때? 근데 너꺼 진짜 이쁘다. 잘 골랐네.”
젤라바 3개째를 들어 나에게 예쁜지 Y가 물어보는 순간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젤라바를 한 번 더 갈아입는 것을 본다면 사막에 가기도 전에 온몸에 열이 오를 것 같았다.
“다 비슷비슷해.”
예쁘다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던 나머지 젤라바를 보지도 않고 대답한 후에 그 방을 나가 밖에서 동전을 소리 나게 쩔그럭거렸다. 4번 정도 옷을 갈아입은 후에야 Y는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고 Y가 조금씩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보였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사막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사이드는 낙타를 타지 않고 맨 앞에서 낙타들을 이끌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자기가 아는 한국말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대애박 사건.”
“아프리카 미쳤어.”
“낙타 똥 맛있어.”
별거 아닌 말들인데도 너무 웃겼다. 어린애들이 ‘똥’ 한 글자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것처럼 우리는 ‘대박 사건’, ‘아프리카 미쳤어.’, ‘낙타 똥 맛있어.’ 이 세 가지 말만 들어도 미친 듯이 웃었다. 사이드가 이 말들을 할 때 특유의 리듬을 담아서 말하는데, 그 말투에 중독돼서 우리도 계속 낙타 위에서 ‘낙타 똥 맛있어.’를 반복했다.
베이스캠프가 보일락 말락 한 지점에서 핫산과 사이드는 낙타를 멈췄다. 그곳에는 보드 두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래로만 차있는 사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샌드 보딩 하고 베이스캠프로 걸어오면 돼”
핫산과 사이드는 이 한 마디만 남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내 눈앞에는 모래 언덕밖에 보이지 않는데 베이스캠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사막에서 조난당하면 물은 어디서 구하지, 지금 내 가방에 있는 물로는 하루밖에 못 버티는데.’라는 생각까지 할 때쯤 Y가 보드를 탄 자신의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Y를 폰으로 찍으면서도 내 시선은 베이스캠프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샌드 보딩은 한 번 타고나니까 또 타기가 싫어졌다. 언덕을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었다. 발이 계속 푹푹 빠지고 제자리걸음이 되기 전에 다른 발을 옮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운동화에 모래가 한가득 차올랐다. 그 차오른 모래들이 내 발을 미친 듯이 압박해서 중간에 모래를 쏟아내지 않으면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베이스캠프로 걸어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낙타들은 잘 만 지나다니던 모래 언덕을 우리 발로 직접 밟아서 걸어가려고 하니까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핫산과 사이드가 걸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얼마 안 걸어도 입에서 헉헉 소리가 나왔다. Y와 나는 평지에서 40분씩 걸어도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사막에서는 10분만 걸어도 주저앉고 싶었다. 다행히 이제는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었을 때 딱딱한 땅이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딱딱한 땅에 이렇게 감사할 줄은 몰랐다. 내 걱정처럼 사막에서 페트병 하나로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