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며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단 결혼을 하고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나는 내 집마련을 위해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결혼 초기에는 남들처럼 신혼집은 전세로 얻는 것이고, 대출을 받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후 임신을 하며 아이가 생기자 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관련 서적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오프라인 강의도 들으며 부동산이라는 세상에 눈을 떴다. 그렇게 부동산 공부를 하며 재미가 붙어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을 했다. 두 아이의 임신, 출산, 육아로 경제활동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자격증 공부는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물론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일은 정말 보람되고 이전에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행복을 선사해 주었지만,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어린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혹은 밤에 아이들을 재워두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위한 공부를 했다. 원래 대학원에 가고 싶어 했을 만큼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공부를 통해 다시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며 다시 무언가를 성취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당시 1차 시험에 합격했는데 2차를 준비할 때 복직하며 다시 비행하느라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그러다 코로나로 다시 쉬게 되었을 때 공부를 다시 해서 결국 코로나 시기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하던 대학원도 결국에는 가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야간 특수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간 학교는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일반대학원이었다면 조금 분위기가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직장인들이 다니는 특수대학원의 분위기는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맥을 쌓기 위해서 모인 목적이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회사에서 상사에게 하는 사회생활을 교수님께 그대로 해야 하는 상황을 목격한 후에는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작한 과정을 끝까지 마쳐야 했기에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내가 학교를 다니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마음의 결심을 서게 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스스로 내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갈 때마다 첫째를 친정엄마 집에 맡기고 뱃속에 있는 둘째와 함께 열심히 통학하고 수업을 듣던 그 시간을 나는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요가와 등산을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했을 때, 아들, 딸 건강하게 잘 크고 있을 때, 남편의 꿈이었던 독일차까지 갖게 되었는데 더 이상 바랄 게 없고 다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우울증이 심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목표를 정해서 그것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는데 막상 그것들을 다 이루자 더 이상 살 희망과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엄청난 무력감이 나를 감쌌다. 내가 그동안 잘못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성취가 곧 나라는 생각을 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길을 좇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번듯해 보이는 내 인생이 막상 나에게는 전혀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요가와 등산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운동을 하며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내가 행복한지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작년에 한라산 등반을 했고 작년에는 요가 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회사에 재직 중이다. 무언가 많은 것들에 도전을 했는데 내 인생은 변하지 않은 느낌이다. 내가 노력을 덜했나, 결국 비행이 최선인 건가. 스스로도 답답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이렇게 비행을 하기가 싫었구나. 그래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던 거구나,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데 아직도 이곳에 있다니, 내가 잘못했네, 일단 퇴사를 하는 것이 먼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회사를 이용하고 있구나, 나도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는 것까지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했지만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홧김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수가 없다. 이미 가정이 있었고, 앞으로 교육시켜야 할 아이가 둘이나 있었으며 대출금을 갚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다. 아마 그래서 나는 더욱더 용기를 내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로 돌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거 말고 내 속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근데 너 계속 그 일 하는 거 괜찮아? 그 일만 하다가 죽어도 괜찮아? 그냥 그렇게 살면 행복해?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지 않겠어?
내가 죽는 순간에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더 이상 비행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더 많은 소비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더 많은 월급을 받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직 확실한 단 하나의 진실이다. 그 진실을 이번에는 외면하고 싶지 않다. 그 한 걸음의 용기는 내가 내야 한다. 그것까지가 내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