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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여진 Apr 05. 2024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들

세상

비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분명 이 직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여행했던 것은 물론 기내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배운 점들도 많았던 것 같다.


여행을 하는 것이 내가 승무원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나는 왜 선배 승무원들이 해외에 나와서 호텔방에만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거면 대체 왜 승무원을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할 만큼 입사 초기에 나는 어디서든 열심히 밖에 나가고 투어를 하고 여행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어느새 나도 그냥 호텔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올라오고 체력적으로도 널뛰는 시차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이 좋은 곳들에 내가 혼자 와서 이 광경을 혼자 보는 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질문이 속에서 계속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뉴욕, 파리, 런던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더라도 내가 원해서, 계획해서, 돈을 지불해서 여행을 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하러 오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달랐다. 여행의 시작은 계획부터인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또한 여행은 결국 장소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하다는 것 또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이후에는 여러 도시도 이미 둘러보고 투어도 해보고 좋다는 웬만한 곳들은 거의 다녀온 이후에는 사실 무엇을 보고 경험하든 큰 감흥이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가 새로운 장소에 있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즐기면 되는 건데 어느 순간 계속 의미를 찾게 되었다. 아무래도 외로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좋은 곳에 갈 때마다 가족과 함께 왔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다.


유난히 자주 나오는 스케줄이 있다. 내게는 싱가포르가 그랬다. 장거리에 육박하는 비행시간에 서비스도 두 번 나가고 여행객도 많지만 비즈니스 수요도 많아 까다로운 승객들이 많은 편이라 힘든 스케줄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비행이 힘든 것은 둘째치고 싱가포르라는 도시 자체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가면 늘 반가운 곳이다. 그리고 갈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둘째를 임신했을 때 이제 막 10개월 정도 된 첫째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여행을 온 적이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올해 8살, 9살이 된 아이들과 함께 넷이서 싱가포르를 한번 더 다녀왔는데 역시 여행과 비행은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 가기 위해 그동안 비행으로 올 때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가보고 싶어도 안 가고 꾹 참았는데 이번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할 수 있어서 유독 좋았다.   

물론 결국은 다 마음이 하는 일이니 다시 내 마음을 잘 고쳐먹으면 비행을 가도 여행을 하러 온 것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해외 스테이션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비행을 했던 기억도 있고 주변에도 정말 즐기면서 행복하게 비행을 하는 승무원들도 많다. 해외에 있는 친지나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가보고 싶었던 박물관이나 매장, 식당에 방문하기도 하고, 근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저 호캉스를 즐기는 것도 훌륭한 계획이다. 내가 근무하는 비행에 여유 좌석이 있다면 가족을 동반해서 비행 겸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승무원만 누릴 수 있는 정말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인데 다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저렴한 직원 티켓인 만큼 갑자기 예약이 늘어나면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음고생과 대비책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나도 뻔하고 당연해서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결국에는 진리고 사실이다. 무엇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아무리 진심으로 원했던, 간절했던 목표였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와 초심이 힘을 잃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 싸게 사는 만큼 마음고생이 동반된다는 것. 어떠한 것이 그 누구에게 의미가 있든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결국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이 의미가 있다. 영원히 산다고 하면 얼마나 무기력하고 재미가 없을지 상상이 안된다.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가 않을 것 같다. 계속 미루게 되기만 하지 않을까. 비행을 계속한다는 것이 여행에 있어서도 그런 의미가 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그때 나가지 뭐, 이번에는 그냥 방에서 쉬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피곤하니까, 날씨가 안 좋으니까, 혼자 있으니까 이런저런 핑계로 그냥 호텔에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목적지에 착륙하기 직전 점차 그 도시가 그 위용을 드러낼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행지를 바라보는 여행객처럼, 한 순간도 창문 밖에 눈을 뗼 수 없는 설레는 마음을 듬뿍 안고 있는 여행객의 모습이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저랬던 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딜 도착하든 그저 피곤하니 얼른 방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이러한 순간도 다 내가 경험해야 하기에 지금 일어나고 있나 보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고. 결국 끝까지 행복한 사람은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인가 보다. 무엇이든 신기하고 궁금하고 좋았던 어린아이처럼. 결국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계속해서 이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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