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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배씨 Feb 18. 2020

대학원 가고 싶은 직장인

나의 오랜 꿈은 진짜 꿈이 맞을까

 나는 심리학과 학부 졸업생이다. 졸업 당시 동기들은 모두 열이면 아홉은, 대학원 진학에 대해 고민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려면 해당 전공에서 석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부모님에게 더 이상 손 벌리지 않고 빨리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심리학 분야에서의 취업을 하자면 단순히 석사까지만 고려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스터디, 교수님과의 상담, 연구실 인턴 등등을 거치면서 지금 이 정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길고 긴 학문의 길을 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직장생활은 취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곧이어 두 아이의 육아까지 이어지면서 거진 10년을 이어지게 되었다. 많은 직장인들 모두 가슴에 오랜 꿈 하나쯤 있듯이 나에게는 심리학 석사 진학이 묵은 꿈이었다. 그리고 휴직이 들어가기 두 달 전, 심리학 대학원 진학 스터디에 참석하게 되었다. 요즘 심리학 대학원이 그렇게 인기라는 말은 들었지만 밤늦은 시각 스터디룸은 거의 만석이었다. 늙은이(?) 혼자 분위기 망치는 거 아닌가 했지만 내 또래도 둘셋 되었고 연령대는 다양했다.

 스터디 참가의 가장 큰 목적은 리더가 알려주는 현재 대학원들의 특징, 교수님들의 주요 연구분야, 지원 시 합격 요령, 등에 대한 노하우를 듣고자 함이었지만 오랜만에 전공책을 공부하고, 각 챕터별 발제문을 쓰고 발표하고 하는 과정 자체가 참 즐거웠다. 오랜만에 공부해서인지 아니면 공부 자체가 좋았던 건지는 구분되지 않았지만 익숙한 풍경을 보는 듯한 편안한 기분이었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업계획서와 시험 준비였다. ( 많은 심리학 석사과정은 시험 또는 면접을 아주 까다롭게 본다. 낙방률이 아주 높다.) 그리고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원에서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확신이었다. 하루에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약 4-5시간. 면접 공부를 2시간 정도 하고, 학업계획서를 1시간 정도 들여 쓰고, 수정하고,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머지 시간에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이미 직장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오래도록 수입 없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원하는 목표는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업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랫동안 현업에 있을 수 있기를 원했다. 애초에 지금 경력을 살리는 공부가 아닌 다른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도 지금 일하는 곳에서 내 10년 후가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MBA를 한 들 이 곳에서의 내 수명이 고작해야 4-5년 연장될 뿐이었다. 내가 학부시절 하고 싶었던 공부는 사실 인지심리와 뇌과학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대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면 의대나 공대에 갔어야 했다는 사실을 학부 때 알게 되면서 석사 진학에 대한 열기가 한풀 꺾였었다. 그리고 지금 직업인으로서 심리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을 때, 가장 가능한 옵션은 임상심리나 상담심리였다. 나는 상담심리 쪽으로 가닥을 잡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 주제를 잡기 위해 오랜만에 전공 관련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내가 좋은 건지, 공부가 좋은 건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오래간만에 전공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어 좋았다. 원래 목적대로 내가 왜 학문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심리학에 대한 책을 읽는 게 좋았다. 심리학 관련 양서들은 정보 면에서 유익할 뿐 아니라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인정받는 책이 많다. 나는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전문가로서 지식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스토리텔링, 남들이 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에서 나오는 생생한 보고, 직업윤리를 통해 벼려진 인간을 향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책. 고대 그리스의 모든 학문은 ars, 예술과 구분되어지지 않았다고 하던가. 모든 학문이 궁극적으로 예술을 지향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어느 소설보다도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무리 책을 읽어도 상담심리학 책 보다, 뇌과학 책을 읽을 때 가슴이 뛰는 나로서는 도무지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싶은 게 맞는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했다. 그냥 심리학을 다시 하고는 싶은데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거니까 이걸 하지 뭐, 이런 게으른 생각의 흐름대로 결정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게 되었다. 한 가지 내가 선택한 길 중의 하나를 마무리 짓고 싶기도 했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단순무식 경험주의자인 나는 이 길 끝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애매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본질적인 즐거움을 깨달았을 때, 왜 이제까지 글을 써 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라는 뜬금없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정 지식에 대한 전문가로서 글 감이 없고, 글쓰기 기법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글을 써서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에 짧든 길든 글이 범람하는 세상인데, 나라고 못쓸 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경우, 긴 글은 아니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한 개씩 포스팅을 하는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다. 재미도 있었고 종종 광고 수익도 들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주제를 잡아서 블로그를 써보지 그러냐고, 좋은 취미이기도 하고 자기 계발에도 좋다고 추천했었다. 휴직의 경험에서 오는 것들을 써볼까 했을 때, 남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컸다. 소소한 경험에 대해 쓴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내가 잘 쓰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지. 하는 두려움에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글 쓰는 방법을 배워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이왕이면 정해진 양식에 따라 완성된 글을 써보고 싶어 졌다.  그렇게 또 다른 해보지 뭐, 로 시작되는 새로운 길에 발을 들였다. 아주 뜬금없는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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