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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Dec 30. 2021

어느 무신론자의 크리스마스

[작가의 작가]22.필연 : 기독교 변증론의 큰 형

 안녕? 기독교 변증학자인 체스터턴을 떠올리면 살 떨리던 면접장이 먼저 떠올라. 글밥을 좀 먹어보려고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었거든. 좀 막연했지. 어렵게 면접 기회를 얻었는데 한 면접관이 글쎄, 이 일을 지금 시작하기에 나이도 많고 출판과 무관한 일을 해온데다가 이 힘든 시기에 출판계에서 일하기엔 내 경력도 너무 부족하다는 거야. 그러면 왜 오라고 했지, 의아했을 무렵, 당황하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기더라고. 갑자기 논술권장목록에 항상 따라다니는 세계문학전집 몇몇 작품이 떠올랐고 번역의 중요성과 한계, 수록작품 선정기준이나 아직 국내 소개되지 않은 작품 등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름 내 경험과 논리로 마구 떠들어댔어. 그 때 한 사례로 체스터턴을 언급했는데, 아찔했던 평가의 시간이 지금은 이불킥하는 흑역사로 남았어.

 체스터턴하면 <정통>(orthodoxy)으로 더 유명해. 기독교에 대한 회의주의자나 무신론자들의 반론을 인정하면서 반론의 입장이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런 논리적 전개를 통해 기독교의 타당성을 주장하거든. 이런 논리적 전개를 귀류법이라고 해. 자신의 명제에 반대 명제를 전제로 추론을 전개하고 추론의 결과가 오류임을 보여줘서 원래 명제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식이야. 신은 없다 왜냐하면 이성이나 과학, 경험으로 입증 불가능한 현상은 거짓이니까라고 한다면 이 주장을 참이라고 가정하고 오류를 보여주는 거야. 그러면 신은 없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어서 신은 있다는 주장을 참으로 만드는 거야. 그 반대는 무신론자의 주장이 되겠지. 체스터턴의 수사적인 표현들은 결국 인간이 유일신에 대한 온전한 정신을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는지 증언하는 것에서부터 기독교 신앙이 출발한다는 거야. 

 나중에 <나니아 연대기>의 C.S. 루이스가 <기독교 삼단논법>을 저술하는데 체스터턴이 큰 영향을 줬다고 하는데 무신론자인 루이스가 성공회 신자가 되는 기적을 보여줬다니, 앞서 <정통>의 힘이 느껴지지. 루이스 뿐만 아니라 톨킨, 보르헤스, 마르케스. 헤밍웨이, 한나 아렌트, 필립 얀시 등의 영적 스승이기도 하고. 나중에 체스터턴은 성공회 신자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는데 교리에 심취할수록,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더욱 전통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었나봐. 역설의 대가답게 보수적인 기독교리 안에서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창작을 할 수 있는지 사회비평, 문학비평, 종교문학, 소설, 시 등 방대한 작품을 보여주는데 소설 중에 <브라운 신부>시리즈나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대표작으로 만날 수 있어. 

 <목요일이었던 남자>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보다는 짧은 소설이라 덕분에 단숨에 읽을 수 있고 세세한 묘사 덕분에 영화나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가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이 있어. 미술 공부를 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이 반영되어 있어서 신묘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장면 전환도 빨라서 웹툰을 읽는 속도감도 느낄 수 있지. 무엇보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 주인공 목요일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나머지 요일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궁금해지지 않니. 나는 금요일로 등장하는 웜스 교수의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는데, 가짜가 진짜가 되는 연기력과 화려한 궤변에 탄복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걸 또 다 알아보는 신묘한 정체가 나타나거든. 무정부주의자의 총재, 초지일관 신비주의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일요일의 활약을 기대해. <정통> 얘기를 하면서 이미 내가 스포일러가 된 기분인데, 일요일의 정체는 함구할게. 추리탐정 소설도 아닌 것이 스릴러나 호러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치 소설도 아닌 것이 뭐라 규정할 수 없어서 더 매력적인데. 아, 이 소설의 부제가 악몽이라는 걸 잘 알아둬. 경찰과 무정무주의자간의 추적, 이중 삼중 스파이들간의 첩보전, 미스터리에 휩싸인 일요일이라 불린 총재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자들의 진실, 무슨 트레일러 스크립트도 아니고 아무튼. 100여년 전 액션 활극을 만끽하길 바라.

 독서를 진통제 삼아 싱가포르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은 거 같아.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잖아. 이것도 결국 계획이라면 찰스터턴의 논리대로 현실을 그저 수용해야했겠지. 그런데 말야,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대신 작은 출판사를 차려서 출간을 했거든. 평가나 이목을 신경쓰느라 쓸데없는 입발 글발을 늘어놓는게 아니라 뚝심 있게 입심, 글심을 품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싶어. 나중에 출판사 무작정 차리기, 영어로 하면 퍼블리싱 스크래치(Publishing scratch) 정도로 번역될 거 같은데 흠, 이런 책을 써서 출간할 수 있을 만큼 업력을 쌓아보려고. 펜데믹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저녁은 무심히도 평화롭구나. 불연듯 내 나이를 확인하고 놀라 세밑에 인생 전반기를 뒤돌아보니 맨땅에 헤딩하기가 결국 내 특기였다니. 잔잔한 근두운으로는 막강한 여래신장을 이길 수는 없으니, 언젠가 더 큰 깨달음을 얻겠지. 이참에 서유기나 읽어볼까. <목요일이었던 남자>보다 더 길고 험난한 꿈을 꾸고 싶네. 새해엔 더 건강하자. 


G.K.체스터턴의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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