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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Sep 27. 2021

외면하고 싶은 '오래된 미래'

[작가의작가]21.공포 : 책없이 어찌 살라고

안녕? 무크지를 뒤적이면서 키득거리고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어떤 작가는 판타지면 모를까 절대 SF대가는 될 수 없다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덕후 흉내를 내기도 했는데 말이야. SF는 읽은 것보다 앞으로 읽을 것들이 더 많은데다 요즘 장르문학이 부상하고 있으니 어떤 신예 작가들이 나올지 궁금해. 벌써 911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다니 믿어지지 않아. 테러라니.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는 비행기를 한 달 내내 TV로 시청할 수 있었다니까. 세기말은 그야말로 SF소설보다도 선명한 혼돈의 시대였어. 

그런데 말야, 카페 한 켠에 앉아서 10분 간격(체감상)으로 나오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마스크를 쓴 채 스티비 원더의 You&Me 를 지나 프랭크 시나트라 Day in day out으로 이어지는 노래를 듣자니 시간선이 꼬여버린 채 텅 빈 카페가 너무 스산하게 느껴져서 정말 말도 안 되게 기시감이 드는 거야. 예맨 난민 입국 때와는 다르게 ‘특별기여자’로 분류된 아프간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반감이 적어서 인권 감수성이 진일보했다고 박수쳐야 할지, 외국이 아니라 자국민으로 가족들과 있어서 안도해야 할지, 아니면 나라 없는 사람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평화라는 가치가 최소한 성립하지 않을까 자문하게 돼. 장장 20년이라고. 

눈에 보이는 두려움이 공포라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불안이라고 하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외출할 때마다 마주하는 광경이 이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 백신 이름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있는 외국인, 노인을 마주하는 병원 풍경은 더더욱 납득이 안 가서 말이야. 보호의 대상이 헷갈리는 데다가 나도 저들처럼 관리의 대상이 언제든 될 수 있으니까. 자꾸 번복하는 의사 소견으로 내 몸을 대조군으로 삼아 백신 접종을 예약하고 막상 맞고 보니 다국적 제약회사의 실험군이 된 기분은 뭐랄까 목숨을 담보로 룰렛 게임을 한달까. 판단은 개인 몫이라니 결국 부작용도 내 탓인가. 그간의 경험과 여러 이유로 병원은 가급적 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어. 

쌓여가는 책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정신으로 이 시절을 나기가 정말 어렵겠다 싶을 때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 생각나지 뭐야. 내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직면할 수 있는 소설이거든. 애서가들이 상상가능한 디스토피아는 이런 세상이 아닐까 하고. 조지 오웰의 <1984>는 미래 전망서라면 <화씨 451>은 여전히 유효해서 더 무섭달까. 지난해 시립도서관이 문을 닫고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기약 없는 휴관을 공지했을 때 더 실감이 났어. 종말이 와도 반드시 있어야 할 건물 두 개를 고르라면 병원과 도서관인데 한 곳은 가야 하지만 가고 싶지 않고 한 곳은 가고 싶어도 한동안 못 갔으니 팬데믹 살풍경 속에 신개념 공포체험을 했다고 봐야겠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난 정말 낙천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렇게 살고 싶은 정말 절실한 옵티미스트야. 슬프게도 자꾸 거듭해서 강조한다는 건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겠지만.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야. 요약하자면 독서가 금지된 25세기를 살아가는 방화수 몬테그의 일대기인데 방화수는 남아있는 책을 불 태우는 사람이지. 몬테그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어느 날 자신의 책을 지키려고 분신 자살한 여인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의구심을 갖게 돼. 전직 교수인 파버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책을 숨겨 읽기를 멈추지 않아. 방화서장 비티에게 발각되는데 이후는 상상에 맡길게. 마지막에 핵폭풍의 상흔 속에서도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책 사람들(book people)이 나와. 개인적으로 사람책이라고해야 될 거 같아. 자신들을 책 방화수라고도 하는데 이 사람들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어. 작가가 생각하는 마지막 희망이거든. 

레이 브래드버리는 생전에 단편과 장편 소설 뿐만 아니라 희곡, 시, 오페라, TV,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500여 편을 발표했다고 해.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부와 명예도 동시에 누렸고. <화성 연대기>와 <일러스트레이티드맨>을 읽어보려고. <화씨 451>은 1966년과 지난 2018년에 두 차례 영화로 제작됐는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원작과 비교해가며 보면 더 재밌을 거야. 비디오게임도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원작 때문에 다시 벽TV를 통해 영화와 가상세계를 즐길 명분이 생겼네. 몰입할 수 있다면 됐어.

여담이지만 레이 브래드버리가 마이클 무어 감독더러 <화씨 911>을 개봉했을 때 자기 소설 제목을 패러디했다고 지적했다는데 ‘화씨’가 직접 조어한 단어는 아니지만 인용을 하면 출처는 언급하는 게 예의라는 취지로. 네가 부시와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이해하고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작가는 이미 70년 전에 미국이 지탄받을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나봐. 

부기스역에 내려서 브라스바사 콤플렉스를 지나 리콩치엔 참고 도서관 가는 길이 눈에 선한데 말야. 1층 한스 카페에서 배도 채우고 근처 독립 서점도 가보고 싶네. 어쩔 수 없이 철지난 SF무크지나 더 읽어봐야지. 놓친 것은 없는지. 독서가 금지되진 않았지만 여행과 이동의 자유가 없는 펜데믹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 그 때까지 건강하자.


*2021년 9월 1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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