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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Jun 06. 2021

나는 왜 이 책을 엄마에게 선물했을까

[작가의작가]20.선물 : 30년 후 자식에게 부칠 편지2

안녕? 지난 주에 외할머니를 모시고 엄마와 외가 근처 휴양림에 다녀 왔어. 외할머니가 올해 아흔 세 살이신데, 7살 때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드셨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엄마에게 채근하듯이 자꾸 확인을 했어. 진짜냐교. 사실이냐고. 외할머니 나이를 재차 확인하면서 거짓말이길 바랬지만 속절없이 시간은 세 사람을 ‘지금’에 머물게 해 놓고 제 혼자 앞질러 가버려. 증조할머니는 은빛 긴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비녀를 꽂은 채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어. 돌아가셨을 때 아흔 두 살이셨는데 증조할머니 장례식은 어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처음으로 호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지. 차창에 스치는 찔레꽃 덕분에 환한 미소로 화한 박하 사탕을 내 손에 고이 쥐어 주시던 증조할머니를 추억하다가 뚝뚝 끊어진 기억선을 두 사람이 조금씩 맞춰가다 보니 어느 새 외가에 도착해 있더라고.

아궁이가 있던 기억 속 옛집은 사라지고 흙바닥 대신 콘크리트 마당에 음메 울던 누렁이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던 백구도 추억으로 남아 조용한 산병풍에 둘러싸인 단단한 양옥 한 채가 빈 터에 덩그러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니. 그 단단한 양옥 아래 거칠어진 노구를 쉬지 않고 텃밭을 일구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아른거려. 이름도 모르는 각종 산나물이며 텃밭 입구에 우뚝 자란 응게 나무를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상추를 한 단 뜯어 흙을 좀 털고 혹여 곤충 알이라도 붙어있을까 오돌토돌한 뒷면을 살살 문질러 씻어서 탈탈 마당에 선명한 재채기를 두어 번 해대면 시원한 초록이 밥상 위에 활짝 웃고 있어. 앞마당에 새로 감나무와 대추나무, 관상목을 심고 가꾸는 할머니의 손길에 어떤 신묘한 초능력이 숨어 있는 거 같아. 초록 엄지(Green thumb)로는 설명이 안돼. 정말 부족해. 더 나눠주지 못해 안달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지만.

할머니는 제법 따가워진 봄볕에 타고 있는 밭둑가를 생전 처음 구경하시는 듯이 엄마와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시더라. 할머니의 장탄사가 들릴 때 마다 나도 신이나 이 순간이 좀더 천천히 지나가길 바랬어. 중간에 장터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괜히 어리광도 부려보고. 막상 도착해서는 가파르고 많은 계단 앞에 잠시 구경만 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짧은 나들이가 아쉬웠는지 돌아와서는 옛 앨범을 뒤져 또 뚝뚝 끊어진 추억을 이어봤어. 잘 정비된 국도 덕에 오고 가는 길이 이만큼 편하고 빨라졌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외가에 가서도 잠깐 드라이브하고 말벗으로 잠시 면피하고 돌아올 때면 부채감이 자꾸 들어. 천륜의 멍에, 굴레라며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단칼에 정리해주는 친구 덕에 한동안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좀 매만질 수 있었어. 그러니까 엄마도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 아무래도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들이 점점 다가오는 거 같아 겁이 나.

그래서 말인데, 이청준의 <축제>를 다시 꺼내어 본 건 우연이 아닌 거 같아. AI와 바둑두는 시대에 새로운 이야기보다 자꾸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반추해보는 건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두려운 일을 미리 경험한달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한참 탓하다가 가족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는 정신 승리를 경험하면서 크고 작은 경조사를 겪다보니 특히 상제에 슬픔말고도 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있다는 걸 알았어. 결핍만 내세워 불행 배틀을 벌이다가 더 힘든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기도 하고, 질펀한 술판 속에 터져나오는 웃음 소리에 놀랐다가도 옛일에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리는 무안한 순간뿐만 아니라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는 무례한 친척 빌런들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등등 천수관음의 장풍 신공을 펼쳐야 할 순간들이 삼일 내내 펼쳐진다고 보면 돼.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축제일까는 끝까지 읽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어. 큰 손녀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가장 많았음에도 영정 사진을 들 수 없는 미묘한 순간들 때문에 터미네이터를 춘추전국시대로 보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며 참았거든. “죽어 신이 되어 가는 망자에게나 뒷사람들에게나 가히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을 만한 일이다”라며 장례식이 왜 기쁨의 축제인지, 죽음이 결국 굴레를 끊는 해방이라는 점에서 장례의 축제성을 발견한다는데, 너는 어느 정도 동의하니.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나는 네 분을 모두 만나는 행운을 누렸는데 그 행운의 크기만큼 그 끝도 지켜봐야 하는 슬픔을 감당해야 했어. 외할머니는 정말 잃고 싶지 않다고. 치기어린 투정 같아 보이겠지만 이 투정 속에 부모님에 대한 딸의 딸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 인생은 너무 짧아.

너도 앞으로 다양한 모습의 장례식을 경험할 텐데 한국의 ‘아름다운 죽음’의 전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청준의 <축제>를 읽고 보면 돼.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도 있어. 한국영상자료원에 들어가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소설<눈길>이나 동화<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임권택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 인물들간 대화가 이어지는데, 소설 속 디테일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어. 이청준 작가의 소설은 영화로 만들기만 하면 큰 상을 받았는데 <서편제>는 영원히 한국고전으로 기억되겠지. 이창동 감독의 <밀양>도 소설<벌레 이야기>가 원작이고. 멋져. 예전엔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읽었는데 역사소설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영화로 나올 때 마다 가서 봤는데 매번 실망만 했어. 씨네21, 키노, 프리미어, 스크린 정도는 읽어야 씨네필이다라고 인정받았고 스크린쿼터제나 발전기금 등 한국영화는 지원의 대상이었는데, 한류를 선도하고 있으니 그 치열한 시절을 건너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 수상 소식이 정말 반가울 수 밖에. 그래도 당부하자면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봐줘.  

<축제> 마지막장 귀퉁이에 ‘96년 10. 17 생일날 현애가’라고 엄마가 짧은 메모를 적어놨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 애틋해지는 거 같아. 그 때 내가 호상이라는 단어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소설과 현실을 구분할 줄도 몰랐던 천거 벌거숭이였을 텐데, 어떤 존재의 부재에 대해 분명 두려움을 느꼈나봐. 그 순간이 좀 더 멀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한결 같은 참을성으로 곁에 있는 부모님도 그렇고 점점 멀어지고 있는 외할머니를 자꾸 붙잡고 싶어. 시간을 선물할 수도 없고. 건강하자.


*2021년 5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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