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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응의 축제 Aug 09. 2020

나를 모르는, 친애하는 그대에게

'나를 알아가는' 지금 이 순간을 선연하게 느끼기

‘나답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나답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요.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역할을 요구받습니다. 딸답게, 아들답게, 여자답게, 남자답게, 엄마답게, 아빠답게, 학생답게, 선생님답게, 직장인답게......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답게’라는 글자 안에는, 어쩌면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core)은 다뤄지지 않은 채, 내가 감당하고 있는 자격들로만 가득 차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차마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갈 새도 없이, 거미줄처럼 얽힌 이해관계들의 한 가운데 사로잡혀서, 그저 간신히 숨만 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나요.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나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건 대체 어떤 걸까요.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 걸까요. ‘나’를 그대로의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018년 봄, 저는 일생일대의 큰 결심을 하고서 TV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백수의 세계로 발을 내밀었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조금 있겠다, 앞으로 글 쓰는 것에만 전념하겠다는 굳은 다짐이었습니다. 육아휴직 대체로 들어간 직장의 계약 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을 때부터, 상사들의 질문 공세는 벚꽃 몽우리와 함께 봇물 터지듯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 이후에 무엇을 하겠냐는,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질문들이었습니다. 물어보는 모양새는 각양각색이었지만, 본질적인 의도는 단 하나인 그 물음들에 저는, ‘드라마를 쓸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되돌아오는 소리는 걱정을 가장한 핀잔들이었습니다. 현실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소리들을 뒤로 하고, 결국 그해 봄. 백수의 길로 들어섰고,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목표로 삼았던 방송작가 교육원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드라마 관련 수업을 들은 것은 잠깐이었기에, TV드라마 대본을 쓰기 위해선 그 문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치과 교정 사기를 당해서 이제까지 모아놓은 돈의 반 이상을 날리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이를 소재로 단편 드라마를 쓰려 구상 중입니다) 그 여파로 온전히 작가원 준비에만 몰입하겠다는 계획이 틀어졌고, 당시 어쩔 수 없이 정말 특이하다 싶은 여러 단기 아르바이트들을 전전했습니다. 새벽 5시부터 마카롱 대리 구매 줄을 서기도 하고, 의사 국가시험 감독도 서고, 구두 배달, 녹색 어머니 대행, 서류 전달, 교정교열 첨삭 알바, 문창과 입시 지도 등등 할 수 있는 거라면 가리지 않고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타임라인에 서 있는 저를 돌아보면,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 그저 관성적으로 몸을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갈증은 있지만, 정작 글을 ‘왜 쓰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말이죠. 어쩌면 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일하던 과거의 나.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의 내가 견뎌왔던 삶 가운데, 감정을 깎아내렸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랐단 구조요청이 아니었을까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절박한 마음들이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랬기에 당시의 저는 글을 쓰고 싶음에도, 무언가 막혀 넘어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몰라, 너무 어려웠습니다.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막막한 느낌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에게 글이 어떠한 의미인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내가 쓰는 글은 어떤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 과연 생기를 띈 이야기이기는 할까에 대한 물음이 계속 내 안에 맴돌았습니다. 마치 누에고치처럼 활자들을 쉼 없이 뱉어내기는 하지만, 그 토악질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나와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숨바꼭질 필드에 들어가기 위해, 이때 했던 중요한 결심 중 또 하나가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알고자 하는 것이 그곳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이라는 경기장으로 들어서야 했습니다. 문창과 진학이 아닌, ‘문학치료’라는 다소 생소한 학과로의 진학이었습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학과가 있었냐’, ‘대학원은 왜 가는 거냐’라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전자의 질문은 보다 쉽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후자의 질문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새로이 가려는 걸까.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대학원’과 ‘방송 작가원’은 참 결이 다른 두 길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는 두 가지를 함께 준비했고, 다행스럽게도 2019년 상반기에 두 가지 모두 합격해, 동시에 그 과정들을 밟아나갔습니다. 대학원을 왜 가냐는 질문은 입학을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물리적으로 타인에게서 들은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건넨 질문이었습니다. 너는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깨닫기 원하니.      


그 질문에 내린 답은 ‘나는 나를 잘 모르겠어. 나를 알고 싶어’였습니다. 타인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류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가능했지만, 상대적으로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이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며, 무시하고 꾹꾹 눌러 담아놓았던 나의 감정들은, 나비효과처럼 거센 폭풍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나름 스스로가 배려심 깊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나에게 제일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제일 몰랐습니다. 나를 가로막았던, 거대한 벽의 첫 벽돌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나와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를 알아가고, 그 새로 찾은 벽돌을 동력삼아 내 손가락을 통해 쓰여지는 드라마 대본이, 다시금 나에게 힘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수업을 듣는 것이었지만, 결국 나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스스로를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내 안의 작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알아가기 시작하자, 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의 결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나를 보살펴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차츰차츰 나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겼습니다.      


나에게 있어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순간들을 살게 해주는 것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지금의 모든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야기의 어느 페이지에 멈춰서 있기도 하고,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합니다. 그저 간신히 벼랑 끝에 매달려 손가락 몇 마디의 힘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넉넉히 이기어 내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죠. 저에게 있어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존재하는 마음 근육에서 출발하는 힘입니다.      

그 힘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양할 것이고, 또 한 사람에게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주기’ 입니다. 숨바꼭질에서 찾은 술래 중 하나이지요.      


저는 요즘도 저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너는 지금 어떤 마음이니. 너의 마음은 어떤 때 따뜻함으로 가득 차올라, 온몸이 붕 뜨는 것 같은 행복함에 충만해지니.      


여러분은 어떤가요. 

몽글몽글함으로 가득 차오른 마음이, 내 발바닥을 지면에서 떨어뜨리는 때가 언제인가요. 

가장 최근에 그런 마음을 느낀 때가 언제인가요. 

지금 당신의 마음 근육은 건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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