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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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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세끼 Sep 21. 2022

지천명은 무슨... 그냥 애새끼

두달만 있으면 ‘만’으로 오십이다. 부정을 할 수도, 그렇다고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현실. 오십 오십 오십, 쉰 쉰 쉰...  그렇다. 아직도 실감 안나는, 언젠가 오겠지만 결국 이리 올 줄 몰랐던, 그 쉰이 확실히 되어버린 것이다.


쉰.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직 ‘젊다’고 할 수 있던 시절. 내게 쉰은 너무나도 완벽한 어른의 나이였다. 아닌 사람들도 가끔 있었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어른’같은 느낌이 드는 어른들이 꽤 있었다. 지혜롭고 이해심 넓은 그런 어른들. 미처 깨닫지도 못한 문제를 알려주고 조언하고 여유와 대범함을 보여주던 어른들을 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지금 이 꼴 보다는 좀 더 성숙해지겠지, 그래도 뭔가 해냈다고 할만할 게 있겠지, 좀 더 자유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매일매일 나를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아침 잠도 없어지겠지.  


때로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때로는 어영부영 뭉기적대다 어느새 성큼 나이 오십이 다가왔다. 머리는 군데군데 희끗하고 얼굴은 곳곳이 쳐졌으며,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지 않고는 작은 글씨가 안보인다. 입끝을 맴돌기만 할 뿐 한번에 나오지 않는 단어의 숫자는 늘어가고, 했던 말은 반복하는 줄도 모른 채 반복하고 있다. 부정적인 변화만 있는건 아니다. 적게 ‘입력’하고 빡세게 ‘인출’하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오히려 늘어나는 자산이 생겼다. 바로 화수분처럼 좋아진 몸의 연비. (예전보다 훨씬 적게 먹고 많이 걷고 종종 뛰는데도 매월 0.5키로씩 꾸준이 늘어나는 몸무게 실화냐...ㅠㅠ)



누구나 말하는 오십 즈음에 나타나는 신체 변화들. 내 몸은 완연한 오십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왜 마음은 이 모양인가. 나이들면서 신체처럼 마음도 좀 삭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드는데 따른 성숙하고 초연한 삶의 자세는 음식 삭히듯 마음도 삭으면서 나오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 나는 더 갈팡질팡, 뾰족뾰족, 거칠거칠해지는가 말이다. 꼴보기 싫은 인간들은 많아지고 그냥 넘겨도 될 세상만사 불평할 것들이 넘쳐난다. 경험이 많아져 포용하는게 아니라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만 강해진다. 같은 걸 들어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재단한다. 연륜은 개뿔. 그런 이름으로 포장된 편견 덩어리다. 몸은 삭아가는데 마음은 썩어간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절망스러운지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나잇값 못하는 꼰대들 역시 차고 넘친다. 저 나이 먹고 저러고 싶을까 싶은 사람을 오가며 열두번도 더 만난다. 그 와중에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다 자만하고 있다. 웃긴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선가 정신과 의사가 노화할수록 감정과 감각의 역치가 낮아진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역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강도가 낮은 외부 자극에도 쉽게 욱하고 감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일터. 그래서 나이 들면서 의심과 불안이 늘고 화와 분노가 많아진다고 한다. 나 지극히 정상인거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궁금해진다. 이것이 과학일진데 ‘인자하다’는 수식어는 어쩌다가 나이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명사 앞에 전용으로 붙게 되었는지. 이대로라면 앞으로 이 단어는 사어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전 친구와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어디가 아프다, 무슨 약이 좋다더라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 ‘남들은 우리 더러 지천명이라는데 여전히 내 앞가림을 못하고 있다’로 귀결됐다. 손님 없는 홀 옆 테이블에서 마늘을 까던, 6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되는 아주머니가 걸걸한 목소리로 한마디 걸쳤다.

“지천명은 무슨, 그냥 애새끼지.”

우리끼리 떠들던 중 순간 들어온 어택에 당황스러웠다. 앞에 앉은 친구는 ‘뭐야 저 아줌마...’하며 표정으로 이죽거리는데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예순, 일흔 되더라도 마찬가지여. 인간 안 변해.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왜 있것어. 나잇값 못하고 죽는 인간도 부지기순데. 그래도 나잇값 하려 발버둥치다 죽으면 안됐다는 얘기라도 듣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던지고 주방으로 표표히 사라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친구와 나는 눈빛으로 감탄했다. 와우, 삶을 꿰뚫는 저 통찰력. 맞다. 지천명은 무슨. 그냥 애새끼다. ‘50=지천명’ 공식은 맥락없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다. 공자님같은 성인이나 50이 되어 하늘의 명을 깨닫는거지 나같은 갑남을녀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질풍노도의 내 마음. 알면 됐다. 그러니 너무 자괴감 갖지는 말자. 그리고 입만 닫자. 그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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