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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스트 Dec 07. 2023

난임검사를 받고 왔다

하다 하다 임준생이라니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 0.7명


난임병원에 다녀왔다.

뉴스에서는 그런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안 낳는다고. 이러한 현상은 데이터로 증명되니 팩트는 팩트다. 그런데 일부는 문자 그대로 못 낳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내가 되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 병원에서 대기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자기 얘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1월, 자연임신 시도 6개월 차에 들어서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 35세 미만은 1년까지, 만 35세 이상은 6개월까지 자연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이라고 한다. '물이 반이나 남았어'와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어'의 차이인 걸까. 나는 30대 초반이니 아직 반이나 남았고 1년까지는 기다려야지 싶으면서도, 이러다 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특히, 매달 임신테스트기(임테기) 한 줄을 보는 일은 끔찍하다. 드라마에서는 원치 않아도 예기치 않게 두 줄이 잘만 나오던데. 나는 왜 한 줄만 나오는 거지. 이거 고장 아냐? 이게 고장이거나 내가 고장이거나 둘 중에 하나는 고장인지도 모른다.

매달 실패의 쓴맛을 보는 것 같다. 마치 취준생일 때 '귀하는 우수한 인재입니다만 아쉽게도...'라는 불합격 메일을 받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오죽하면 임준생(임신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하다 하다 암흑기 같은 취준생 시기도 모자라 임준생 시기까지 겪다니. 인생에서 꼭 모든 경험을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한두 번 만에 임신에 성공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임준생이라는 표현을 재밌어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러다가 남과 비교하게 된다. 방금 말한 친구 말이다. 자궁근종 때문에 호르몬제까지 투여하며 고통받던 친구인데 걱정이 무색하게 한두 번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가끔 친구에게 연락을 하면 그때마다 항상 귀엽고 예쁜 아이 사진을 보내준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크는 친구의 아이를 사진으로 본다. 남의 아이는 정말 빨리 크구나.

그 친구를 보며 생각한다. 자궁근종이 있는 친구도 저렇게 빨리 임신을 하는데 생리주기 일정하고 그 흔한 혹 하나 없이 멀쩡한 나는 왜. 비교는 나 스스로를 망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쑥 모난 생각이 얼굴을 들이민다. 당분간 친구에게 연락할 수 없을 것 같다. 귀엽고 예쁜 아이의 근황은 임신에 성공한 후 안정기에 접어든 다음에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쯤 되면 여러 후기도 찾아보게 된다. '마음을 편히 가지니 생기더라'라는 마인드컨트롤형, '배테기(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해서 성공했다'라는 도구사용형, 대추차, 흑염소즙, 두유 등을 섭취하는 민간요법형 등. 사실 배테기는 이미 해봤고 대추차, 흑염소즙도 먹고 있는데 효과를 잘 모르겠다. 이건 성공해야만 효과를 입증할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그냥 기도메타다.


그래서 우리는 임신 시도 6개월 만에 난임병원을 찾았다. 난임병원은 생리 2일 차(병원에 따라 2, 3일 차)에 가야 한대서 날짜를 맞춰서 갔다. 산전검사와 피검사를 하고 왔다. 생리일 산전검사는 이상무. 피검사로는 난소나이를 보는데 검사 결과는 배란일에 오면 알려준다고 했다. 배란일에 또 해야 하는 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 검사는 꼭 오늘 검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다음에 하기로 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직 난임 확정은 아니다. 사실 나는 역설적이게도 난임이 아니라는 확신을 받고 싶어 난임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우리 둘 다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나는 정말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1년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난임으로 판정받는다면 우리는, 특히 나는 또 다른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겠지.


불안과 희망을 안고 병원에서 나갔다. 진료비 20만 원이 찍힌 무거운 카드 영수증도 함께. 카드 영수증을 보며 생각했다. 정부는 안 낳겠다는 사람 말고 낳고 싶은데 못 낳는 사람들을 더 지원하는 게 어떤가. 아니, 어쩌면 낳을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산전검사, 난임검사 미리 하라고 혼인신고 할 때 구청에서 산부인과 정기검진권을 나눠주면 어떨까도 싶다.

내가 낳고 싶다는데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보겠다는데 시작부터 20만 원이 깨진다. 물론 난임으로 확정되면 지원이 있다고는 한다. 그게 충분한지는 모르겠다. 그전까지는 찾아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난임이 아닌 걸로 확정됐다는 내용이기를. 그리고 오늘 병원에서 마주친 모든 분들이 새 생명이라는 축복을 맞이하기를. 마지막으로 훗날, 아기를 재워놓고 그제야 한숨 돌리면서 이 글을 보며 '이런 때도 있었지'하고 회상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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