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라는 격식의 한가운데에서 격식을 깨기 위해 우리가 한 것
꽃가루를 날려
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우릴 오만과 편견에 가두지 마
노래를 들은 순간 확 꽂혔다. 마치 봄날의 축제 같은 노래였다. 바로 레드벨벳의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이라는 곡이다. 이 곡은 올해 3월 21일 발매됐다. 우리는 따끈따끈한 아이돌 신곡을 결혼식 입장곡으로 틀었다. 무도회를 뒤집고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나름의 소심한 파격이었다.
우리 결혼식은 봄의 한가운데, 4월 9일에 열렸다. 입장곡으로 이 곡이 아닌 다른 곳은 상상할 수 없었다. 결혼식 시기와도 잘 맞고 내가 생각한 밝고 생기 있는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왠지 처연하게 느껴지는 입장은 싫었으니까.
우리는 이 곡을 결혼식 입장곡으로 정했다. 이 결정에는 내 제안을 흔쾌히 승낙해 준 남편 덕이 크다. 승낙이라기보다는 파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좋아한 것 같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예스를 외쳤다.
친구 중에 다소 맹숭맹숭한 친구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이건 다소 평범한(?) 친구에게 물어보고 객관적인 평가를 들어야 하는 사안 같았다. 친구는 '종잡을 수 없는 색다름에 신선한 충격은 받겠다'면서도 '기억에 남겠다'라고 독려해줬다. '하지만 그날은 너의 날이니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 말은 '네 마음에 든다면야 선택하는 거지만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겠지.
나 역시 호기롭게 레드벨벳으로 결정했지만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다. 스스로도 '이거 진짜 틀음?'을 되물었다. 결혼식 할 때 고전적인 노래를 고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촌스러우면 어떡하지? 그리고 내가 생각한 반응과 다르면?
결과는 아주 흡족했다. 특히 선곡이 좋았다고 보내준 메시지에는 감동받았다. 우리의 이 사사로운 고민과 약간의 일탈을 알아준 것 같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내 지인 한 명은 결혼식 날 메신저 배경음악을 이 곡으로 변경했다. 우리만의 작은 일탈은 썩 괜찮았다. 이 신나는 노래를 틀고도 춤추지는 않았지만.
물론 결혼식을 아예 안 하거나 스몰웨딩을 하는 방식이 격식을 깨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겠지만 거기까지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지나고 나니 결혼식은 돈 많이 드는 요식행위일 수도 있지만 결혼식만이 가지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대로 결혼식이라는 격식의 한가운데에서 격식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1. 아이돌 노래를 결혼식 행진곡으로 썼다.
2. 신랑 신부가 동시에 입장했다.(양가 아버님이 계심에도)
3. 사회자는 여자였다.
4. 그 여자 사회자는 슈트를 입었다.
5. 축사는 양가 아버지가 아닌 신랑의 어머니와 신부의 언니가 했다.
결혼식에 가보면 신부 아버지가 신랑에게 딸을 넘겨주는 장면이 싫었다. 한 번 딸은 영원한 딸인데 누가 누구에게 넘겨주느냔 말이다. 다행히 엄마도, 언니도 그리고 남편도 생각이 같았다. 그래도 아빠의 의견을 물어보자. 아빠도 신랑 신부 동시입장에 동의했다.
그래도 문득 '혹시 하객들이 신부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우리 생각을 버릴 필요는 없겠지. 지난해 12월에 결혼한 남편의 누나, 형님도 동시 입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새삼 힘을 얻었다.
주선자이자 사회자인 친구의 슈트를 고르면서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심지어 여성복 매장에서 여자 직원이 저렇게 질문했다. 나는 그때마다 사회에 남자 여자가 어딨냐고 되물었다.
우리는 내 절친이며 남편의 친구이자 우리를 주선해 준 주선자에게 사회를 부탁했다. 보답의 의미로 슈트를 선물했다. 친구는 그 슈트를 입고 사회를 봤다. 친구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멋있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도 사회자의 사회 실력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를 가두는 오만과 편견에 작고 크게 반항하며 인생길을 걸어 나가고 싶다. 우리를 어제와 내일에 가두지 않고 우리만의 리듬과 생각으로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