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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스트 May 02. 2024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인공1차 성공

민들레 홀씨만 한 아기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2차 피검사 수치가 196.7로 더블링 됐네요. 임신입니다.


인공수정 1차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준비 10개월, 난임병원 진료 4개월 만의 수확이다. 민들레 홀씨만 한 아기가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기는 내 손에는 잡히지 않는 희망 같은 존재였는데 지금은 뱃속에 있단다. 벌써부터 끊임없이 잠이 쏟아진다. 너는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여라.




난포야 터져라

4월 11일(목)이 결전의 인공수정 1차 날이었다. 앞서 하루 전인 10일(수) 오전 9시경에 난포 터지는 주사 오비드렐을 맞았다. 이 난포 터지는 주사는 시간이 맞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꼭 병원에서 정해준 시간에 맞아야 한다. 나는 병원에서 말한 시간이 오전 9~10시 사이여서 그 시간을 지켰다.


임신을 확인하고 카페 글을 찾아보니 인공 시술 이틀 전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으라는 병원도 있는 듯하다. 선생님마다 추구하는 타이밍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인공 시술 직전 날 오전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았고, 다음 날 오전에 시술을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과배란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난포가 여러 개라 10일(수)에 배란통이 엄청 세게 왔다. 이미 난포가 다 터져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적이었다.


난포 터지는 주사 오비드렐




기다림은 길고 시술은 짧다

인공수정 당일. 먼저 남편의 정자를 채취해 정제해야 한다. 원심분리기 등을 통해 운동성이나 상태가 좋은 상위 정자를 추출한다고 한다. 나는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최정예 요원이라 부른다. 최정예 요원을 선별하는데 대략 1시간이 걸린다. 인공수정은 이 과정이 가장 길다. 따라서 혹시 남편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야 한다거나 일정이 있다면 남편만 오전에 먼저 왔다가 가도 된다.


약 1시간 후 정자 정제가 완료되면 이제 시술에 들어간다. 평소 들어가는 진료실과 다른 수술실 같은 곳에 들어가서 기분이 묘했다. 진료 볼 때와 똑같은 진료의자에 앉는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거의 5분 만에 끝. 약간 찌르르한 느낌 정도가 있었다. 정말 끝이냐고 물으니 끝이란다. 진료의자에 몇 분 정도 누워있다가 회복실 같은 곳에서 15분을 누워있었다. 이게 정말 끝이다.


그 후로는 착상을 돕는 유트로게스탄 질정 지옥이다. 아침 2개, 저녁 1개를 넣어야 한다. 아침은 기상 직후, 저녁은 7~8시 사이. 외출을 해도, 어디에 있어도 반드시 넣어준다. 처음엔 너무 낯설었는데 하다 보니 일과가 되어 익숙해졌다. 질정은 5주 초음파 볼 때까지도 넣으니 익숙해져야 한다.

 



타이밍이 좋아요, 느낌이 좋아요

인공 시술 당일 긍정적인 시그널이 몇 개 있었다. 우선 의사 선생님께서 추출한 남편 정자가 건강하다고 하셨다. 나는 난포 3개가 쭈굴쭈굴 잘 자랐다고 했다. 나는 배란이 안 되는 게 문제였던 상황이라 우선 안심이 됐다. 그러면서 타이밍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진료 보실 때 립서비스를 안 하시는 분이라 오히려 더 신뢰가 갔다. 애초에 인공수정 1차는 그냥 하는 거라고 자연임신과 임신 성공확률도 거의 비슷하니 기대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분이다. 아마 실망하지 말라고 미리 밑밥을 까신 것 같다. 선생님 이러시면 저 기대하게 되잖아요.


주의사항을 듣고 질정을 한 아름 받은 뒤 카운터에서 결제를 하는데 파이팅 넘치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느낌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괜히 기대하게 될까 봐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 느낌이 좋다고 한 번 더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까지 이러시면 저 진짜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래도 덕분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피검사 이틀 전, 초매직 두 줄 확인

임신테스터기(이하 임테기)에게 배신당한 게 어느덧 9개월째라 일부러 임테기를 안 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래도 매는 먼저 맞아야지 싶어서 피검사 예정일 이틀 전에 테스터를 해봤다. 인공수정은 보통 정부지원을 받아 진행되기 때문에 피검사를 무조건 하러 가야 한다. 피검사 전에 월경이 시작돼도 가야 한다.


보통 인공수정 2주 뒤가 피검사 예정일인데 나는 인공수정 2주 뒤가 병원 오전 진료날이라 하루를 당겨가야 했다. 그렇게 인공수정 D+11 얼리임테기에서 초매직 두 줄을 확인했다. 너무 희미했지만 매번 봐오던 단호박 한 줄과는 달랐다. 놀란 마음에 남편을 깨워 이리저리 임테기를 돌려가며 보여줬더니 남편은 "이렇게까지 해서 보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 아니, 초매직은 이런 거 맞거든!


찾아보니 인공수정 후 너무 빨리 임테기를 할 경우 난포 터지는 주사의 영향으로 두 줄이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카페 검색 결과 적어도 인공수정 후 10일은 지나야 난포 주사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있는 듯하다. 모르고 11일에 테스트를 했는데 적절한 시기였다.


인공수정+11일 : 얼리임테기로 초매직 두 줄 확인


다행히 다음 날 얼리임테기와 원포임테기를 통해 조금 더 진해진 두 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망의 24일(수) 산부인과에 가 피검사를 하고 오후 2시 30분쯤에 피검사 수치를 들었다. 피검사 수치는 55.9. 이틀 뒤 2차 피검사를 오라고 했다. 2차 피검사에서 피검사가 1.66배 높아지는 더블링을 확인해야 한다.




더블링 통과, 임신입니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긴 시간이었던가. 설렘과 걱정을 동반한 마음으로 26일(금) 오전에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피검사를 하고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와 결과를 기다렸다. 깜빡 잠들었다가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다. 2차 피검사 수치는 196.7이었다. 1.66배를 넘어 3.5배를 넘는 수치였다. 임신이라고 했다.


1차 피검(+13일) : 55.9 → 2차 피검(+15일) : 196.7


5월 9일(목) 또는 10일(금)에 초음파를 보러 오라고 했다. 초음파를 볼 생각에 하루하루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아무래도 내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9일에 가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이틀에 한 번 임테기를 하며 체크하고 있다. 오늘 처음으로 임테기가 역전되어 마음이 놓인다(인공+21일). 임테기 역전이란 테스트기의 대조선보다 결과선이 더 진해진 것을 말한다. 보통 임테기가 역전되고 병원에 가는데 이때쯤 초음파로 아기집을 보고 올 수 있다고 한다.



인공수정 1차 도움 될만한 내용

인공수정을 준비하며, 인공수정을 하고 나서 그리고 임신을 확인 뒤 지금까지 걱정되는 것,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인공수정을 하는 분이 궁금해할 만한, 혹시라도 도움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 경험이지만 말이다.


1. 추가 관계 여부 : 하지 않음

나도 궁금했고 맘카페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셨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해도 된다는 거였다. 나는 인공수정 뒤에 배 빵빵한 느낌 등이 있어서 추가 관계를 하지 않았다. 다만 인공 4일 전에는 관계를 가졌는데 정자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제된 정자를 최정예 요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최정예 요원이 실패하는데 다른 요원이 되겠냐고 생각했다. 물론 인공 1차에 실패했다면 '혹시 추가 관계를 안 해서 안 됐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듯하다.


2. 착상에 도움 되는 음식 : 딱히 없으나, 두유와 대추차는 종종 먹음

산부인과 카운터를 나오면서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아쉽게도 착상에 도움 되는 음식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10개월 동안 마음 고생하며 대추차, 흑염소즙, 4색 보감, 포도즙 등은 속는 셈 치고 사봤다(낚는 거라고 해도 낚여줬다).


대추차는 마셨을 때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있어 종종 마셨다. 두유는 아침식사 대용으로 견과류, 에너지바와 함께 먹었다. 인공을 준비하면서는 호르몬 교란이 올 수 있어 복용하던 한약 등은 끊는 것이 좋다고 병원에서 얘기했다. 그래서 인공 준비 기간과 인공 후에 즙류는 아예 먹지 않고 있다.


3. 마인드셋 : 마음은 절대 못 놓음, 그러나 인공 1차는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

여러 임신 후기에 '마음을 놓으니 아기가 생기더라'라는 말이 있다. 임신준비가 거의 1년이 돼 가니 주변 사람에게 이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상 마음을 놓기가 쉽지 않다. 인공 전에는 매일 시간 맞춰 배주사를 맞아가며, 인공 후에도 매일 시간 맞춰 질정을 넣어가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피검사 날짜도 잡혀 있는 마당에 모른 척 지낼 수도 없다.


그런데 이번 임신을 생각해 보면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인공수정 1차는 그냥 하는 거다', '기대하지 마라'라고 한 그 말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 말을 듣고 실망한 게 아니라 '그래 사람들도 그러더라 인공 1차는 로또라고. 그러니까 그냥 해보는 거지'라는 가벼운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성공한다'라는 생각을 가졌더라면 마음이 더 무거웠을 듯하다.


4. 임신 극초기 증상 : 사바사인데 어지러움, 매스꺼움 온갖게 다옴

임신 극초기 증상으로 임신을 예상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그 증상이 생리전증후군 PMS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9개월 동안 이것 역시 많이 당해봐서 증상을 보고 기대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임신 극초기 증상은 사람 바이 사람인데 나는 인공+7일부터 왼쪽 오른쪽 자궁이 찌르르했다. +10일에는 갑자기 해물이 먹고 싶어 전복, 딱새우 등을 날 것으로 먹었다가 탈이나 바로 쏟아냈다. 이때부터 어지러움과 매스꺼움, 가슴통증이 시작됐다. +11일부터는 위와 같은 증상에 더해 열감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침에 배가 비어 있으면 헛기침이 나기도 했다. 예민한 사람은 임신 3주에도 증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임신 사실을 빨리 알게 된 사람도 증상을 빨리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기집 집들이를 기다리며

사실 지금은 임신소식을 알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다. 임신 12주 이내 여러 원인으로 자연유산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늦으면 12주가 지나 임신 중기에 접어들었을 때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리는 '임밍아웃'을 하는 부모도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아기집, 난황을 보고 심장소리까지는 듣고 가족에게 알리는 듯하다.


오래라면 오래 아기를 기다리고, 인공수정까지 한 터라 촉새 어미와 아비는 벌써 많은 사람에게 임신 소식을 알려버렸다. 나는 배란에 문제가 있었던 것 외에는 자궁 건강은 좋다고 해서 이 아기가 무사할 것 같다는 근자감을 가져볼까 한다(집에서 먹고 자는 중).


온라인에서 아기집 초음파를 보고 오는 것을 '아기집 집들이'라고 표현한 게 너무 귀여웠다. 다음 주 아기집 집들이를 기다리며 아직 듣지도 못하는 민들레 홀씨만 한 아가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무럭무럭 자라만 달라고.


사진. 코파일럿(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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