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프랑스어 선생님은 되게 마법사처럼 생기신 곱슬곱슬한 긴 머리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신 분이셨다.ㄷ자로 된 책상에 10명 정도가 다닥다닥 모여 앉았는데,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등 동양인의 비율이 컸다. 아랫반으로 내려갈수록 동양인이 많고 높은 반일 수록 비슷한 언어를 가진 서양 국가 학생들이 많다.
바람이 불고 하늘이 회색이던 날. 선생님은 본인이 좋아하는 샹송을 들려주겠다 했다. 수업을 하기 싫은 건지 아님 정말로 소개해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지만
"Je ne veux pas travailler (공부하기 싫어)"
란 제목의 음악을 들려주셨다. 그러고 수업 시간 내내 반복재생을 하셨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4개월쯤 됐을까- 한국에서의 문법 위주 수업 때문인지, 혹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어학원 수업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 탓인지.
나의 불어 실력은 전혀 늘지 않고 있었다...
나의 끔찍한 불어 실력이 다 드러난 일이 있는데, 프랑스에는 퀵(Quick)이라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그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덜덜 떨며 책에서 본 한 문장을 외웠다. 한국에서 학원을 다닐 때 선생님이 알려주신 문장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정중하고 세련되게 부탁하는 문장이란다!" 덜어내는 법을 몰랐던 나는 그 문장을 외워 직원에게 햄버거 하나를 주문했고, 직원은 나를 보더니 피식-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자면,
당신에게 햄버거 하나를 받을 수 있게 내가 당신에게 정중하게 요구하여도 될까요? 제발요.
수준의 예의바름이었을 것이다. 비웃음을 뒤로 하고 햄버거 세트 하나를 주문하는 데 성공한 그날의 어린 나의 소극적 용기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