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시작되었지만 끝은 더욱 창대하리
언제부턴가 나는 내 몸무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이면 몸무게를 쟀고, 운동을 하지 않은 날에는 초조했다. 주말에 약속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그다음 날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하루종일 굶기도 했다.
내가 첫 다이어트를 시작한 날은 19살 수능이 끝난 후였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 몸이 그렇게 까지 불어 있었는지 몰랐다. 어쩌면 내 몸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고3.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에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뒤쳐지면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생각했다.)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으면서 (당떨어진다고 중간에 간식도 챙겨 먹었다.) 잠은 어느 때보다 적게 자고, 운동량은 거의 0이었다. 학교 계단 오르는 일이나 급식실이나 등하교하는 시간 빼고는 거의 앉아있었다. 어느 순간 부쩍 살이 쪘다. 헐렁했던 교복은 너무 불편해졌고 임시방편으로 체육복만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그리고 피 말리던 수능이 끝났다. 허무함과 동시에 허탈함과 목적 없는 자유를 얻었다. 집에서 딱히 시간 보내는 방법을 몰랐다. 무엇하지 하며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다. 밀렸던 드라마를 보고 집 밖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가 집에서 뒹굴기만 하면 뭐 하냐며 같이 운동이라도 가자는 말에 그래 오랜만에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해 따라나섰다. 고2 때까지 체육시간을 사랑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고 또 운동을 즐겼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나의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명하다.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과 아침에 그룹피티를 하게 됐는데, 그중에 나만 10대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이 많으신 분들보다 체력이 훨씬 달렸다. 그날 나는 먼저 씻으러 내려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체중계에 올랐다. 헉. 정말 저절로 헉소리가 났다.
7x.xx kg
이게 사람 몸무게냐? 내 키가 160이 조금 넘는데, 몸무게 첫자리가 7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세상 살면서 처음 보는 몸무게였다. 우리 집은 특히 외모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평균보다 더 뚱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엄마에게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처음 선언했다. (어쩌면 엄마의 큰 그림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오전에는 엄마와 함께 헬스장을 방문해 그룹피티를 받았고, 오후에는 한의원에 가서 다이어트 침을 맞았고 다이어트 약을 받아왔다.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침에는 집밥 반, 점심에도 집밥 반, 저녁에는 우유 한잔으로 식단을 짜주셨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매일 먹던 양이 있었는데 그 양을 배로 줄이자고 하니 배에서는 왜 밥을 안주냐고 난리였다. 나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하루종일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가서 배고픔을 견뎌내기에 수월했다.) 그렇게 두 달을 힘들게 다이어트를 했고 나는 10kg 넘게 감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 수능 끝나고 2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이어트만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한다. 나는 2달 동안 거의 시체처럼 집에 누워있었고, 아침저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다이어트할 때 살이 많이 빠졌다는 얘기도 들어서 기분이 좋은 건 물론이고, 예전보다 몸은 가벼워져서 활동하기에도 편안해졌다. 옷은 작아진 몸 사이즈에 맞춰 새로 구입하게 됐는데 괜스레 뿌듯했다. 하지만 얻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수족냉증이 생겼고(이건 아직도 달고 있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숱이 정말 정말 많았어서 다행이었지, 머리숱도 적었다면 나는 탈모로 또 한참 고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첫 다이어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목표했던 몸무게를 달성했다.) 나는 슬림한 몸매(이전과는 비교했을 때)와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