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이 Jun 05. 2024

쓸모 있음의 증명

오늘 하루 생각 한 장

오늘은 회사가 쉬는 날이다. 나는 평소에 쉰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쉬면 쓸데없이 시간이 낭비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름 오늘은 늦게까지 잠을 즐겼다. 그리고 눈을 뜨니 햇살은 이미 창가 가득 스며들었고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위까지 번져있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오늘은 뭐 하지?"


물론 계획적인 성향이라 오늘 해야 할 일은 미리 생각해 뒀다. 오전 중에 글 하나 쓰고, 오후에는 장이라도 보고 와야겠다고. 그리고 오늘은 늦게까지 침대 위를 만끽하며 즐기자고 다짐했건만... 누워있는 아침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누워있는 동안 죄책감이 마음을 계속 헤집고 다닌다.


'남들은 다 일하고 운동한다는데... 나는 누워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럴 시간에 그냥 돈 벌러라도 나갔어야 했나...'


'오늘 어떤 일을 해야 생산적인 일일까...'


오늘 하루 자유롭게 보내자고 생각했으면서 해야 할 일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더라도 돈 계산이 먼저였다. 얼마가 드는데 내가 그것을 해서 얻는 게 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재미만을 위해 내가 그 돈을 써서 그 시간을 보내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중에 문득 우울하고 마음이 슬퍼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못하게 하고 있다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호기심이 많았지만 소심했던 나는 내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생겼더라도 부모님께서 "글쎄, 그게 도움이 되나?"라는 질문을 하면 나는 아무 말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갖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의 필요성을 부모님께 강조했다. 그러면 대부분은 부모님이 거절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셨다.


부모님은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이유를 듣고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들어주시곤 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를 많이 궁금해하셨다. 과연 그것이 쓸모 있었느냐고, 그게 도움이 되는 선택이고 도움이 되는 물건이고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냐고. 부모님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고, 뭔가를 얻게 되면 그에 대한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나는 그게 책임감이라 생각했다.


물론 쓸모와 필요에 대해 생각하며 소비하는 나의 습관은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주긴 했다. 그래서 알뜰히 모으고 저축하고 일찍이 재테크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시간도 돈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쉬는 시간이나 가만히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 시간을 효율 있게 쓰려고 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쉬어야 할 시간에도 그럴 바에는 이거라도 해둘까. 저거라도 해두면 나중에 편하지 않나.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기 일쑤다.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계속해서 내 쓸모를 입증하려고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을 누구보다 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서 스스로를 괴롭힌 적도 많다. 집에서도 지친 와중에 부모님께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또 자기 계발을 한다. 물론 스스로를 위한 것도 있지만, 하기 싫을 때 부모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하는 날도 있었다.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나는 참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들이 보는 나를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정도로 쓸모가 있고 잘하는 사람이라 인정받고 싶었나 보다. 사랑이, 인정이 고팠나 보다. 스스로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낀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타고 다니다 보니 남들의 눈에 많이 의지했던 모양이다. 나는 내가 쓸모가 없어도 스스로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남들처럼 나의 쓸모에 대해 바라보고 있었다니... 결국은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미안해졌다.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 소중하다. 많은 감정과 기억이 몰아치면서 그 속에 있던 나의 알맹이를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쓸모를 증명하지 말고 오늘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오늘 스스로에게 하는 말 >


쓸모를 증명하지 말자.

쓸모없어도 괜찮다.

스스로에게 묻자.

너는 뭘 원해?

그럼 그거 그냥 하자.

작가의 이전글 나는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2)좌절 그리고 마음가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