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
나는 방청소를 꾸준히 했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 방의 가구 배치도 아쉬운 것 같고, 깔끔해지고 사용해지기 편해지고 정이 생기기 시작한 공간이긴 하지만 큰 애정이 가져지지는 않았다. 왜일까 고민했다.
가구의 배치를 조금 바꿔보면 새로움과 더 깔끔하거나 더 이용하기 좋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큰 맘을 먹고 방에 있는 가구들의 사이즈를 하나씩 쟀다. 침대, 책상 등 큰 가구의 치수를 먼저 재고 어떻게 배치하면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는지 생각했다. 침대나 책상은 사이즈가 컸기에 어쩔 수 없이 그 길이에 맞춰서 배치해야 했다.
작은 가구나 물건들은 모두 거실로 옮겨놓고 큰 가구를 배치했다. 책상을 벽 쪽에도 밀어보고 가운데에도 놓아보고 이리저리 옮겼다. 하지만 방이 작은 편이라 옮기는 것에 큰 제한이 있었다. 나는 침대와 책상의 공간을 분리하고 싶었다. 내가 작업하는 곳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분리되도록 하기 위해 여러 번 가구를 옮겼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배치로 골라 가구들을 옮겨 고정시켰다.
작은 가구들을 분리해 놓은 배치공간에 맞춰 하나씩 끼워 맞췄다. 자투리 공간이나 꼭 있어야 할 공간에 하나씩 배치해 두니 꽤나 괜찮은 것 같았다. 배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구의 컬러감이나 톤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공간의 통일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중구난방으로 공간이 정돈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쓰던 가구를 들고 와서 사용하거나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필요하다고 해서 부모님이 사놓은 것들을 주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취향의, 내가 원해서 산 가구들은 거의 없었다. 책상 위의 조명이나 서랍정도가 다였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구는 필요에 의해 쓰는 거지 예뻐서 뭐 할까. 물건들은 제 기능만 철저히 할 수 있으면 좋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 하지만 방을 혼자 정리하고 나의 필요에 의해 나의 취향에 맞춰 가꾸어 가다 보니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방에 나의 필요로 의해 있는 물건들이 내 스스로 선택하고 구입하여 사용하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여러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면서 내 취향은 어떤 건지 찾기 시작했다. 깔끔한 올화이트, 아니면 따뜻한 느낌의 우드, 상큼 발랄한 컬러. 다 예뻐 보여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추럴한 우드느낌으로 방을 꾸미기로 결정했다. 책상과 침대가 일단 목재재질로 되어 있어서 가구를 다시 사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목재제품에 알맞은 톤으로 방의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돈이 많이 낭비되지 않는 선에서 내 공간을 꾸며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선호하기에, 딱 좋은 컨셉이라 생각했다.
나는 제일 먼저 침대에서 사용하는 이불을 바꾸기로 했다. 어렸을 적부터 쓰던(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는) 알록달록한 이불을 정리하고 내가 덮고 싶은 소재와 디자인의 이불을 구매했다. 아무래도 공간차지가 제일 큰 부분이 침대였기에 침대의 분위기가 바뀌면 그 공간이 주는 느낌도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이불이 배송되어 왔다. 나는 원래 쓰던 이불을 걷어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멀쩡한 이불을 놔두고 왜 또 새로 사 돈 아깝게."
어느 정도 엄마의 말은 이해가 되었다. 나도 낭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공간을 좀 더 나의 취향으로 채우고 싶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고 결심이었다. 나는 나의 취향과 의견을 존중받았으면 했다. 누구는 낭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불정도는, 의자정도는 나의 취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물건들을 내가 잘 관리하고 또 오래 사용한다면 그것이 과연 낭비인가.
나는 빨래하고 말린 내가 고른 이불을 침대 위에 펼치며 대답했다.
"이거 엄청 오래된 이불이잖아. 나도 그냥 내 이불 내 돈 주고 사보고 싶었어."
엄마는 아쉬운 눈치였지만, 나는 새 이불을 보며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좀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책장은 내가 원하는 컬러의 시트지를 구입해서 붙였다.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귀찮은 일을 한다는 게 스스로 믿기지 않았다. 그냥 물건이 쓰임을 다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쓰임도 다하지만 나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조금의 노력을 들여서 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조금씩 내 방은 내가 원하는 취향으로 하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과, 우드톤 조합으로 깔끔하고 실용성 있도록 꾸몄다. 아직까지 나는 이 공간이 정말 마음에 든다. 책을 골라 볼 때면 내가 붙인 시트지가 꽤나 애정이 간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때면 내가 고른 의자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면 왠지 꿀잠을 잘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보고 감탄할 정도의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나의 노력과 결정이 새겨진 나만의 공간이라 특히 애정이 간다. 방을 보면서 스스로와 친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고 그 취향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나는 자신감을 얻는다. 이 과정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많이 사본 사람이 물건을 고를 줄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이것도 다 하나의 경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중간에 실패한 물건들이나 제품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내 돈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 나는 어느 정도 나만의 경험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적당한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아끼는 어떤 것으로 채우다 보면 그것들은 반드시 자신만의 무언가가 되어 있다. 지식을 습득할 때에도, 공간을 채워나갈 때에도, 또 글을 쓸 때에도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을 정도의 티끌이지만 자신의 것으로 조금씩 채워가다 보면 자신만의 철학, 자신감, 가치관, 감정, 배움들이 생겨나게 된다.
자신의 취향이라는 것은 남들은 알아주지 못한다. 알아주길 바라서도 안된다. 단지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꿋꿋하게 채워가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들이 쌓이다 보면 스스로는 더 단단한 심지를 얻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취향을 자신조차도 모르게 묻어두지는 말자.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스스로를 돌볼 수가 있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알아야 스스로를 지켜낼 수가 있다. 자신에게 좀 더 선명한 사람이 되어보도록 하자. 자신을 알아가는 이 과정은 죽을 때까지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내면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스스로 발전시키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