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 Apr 20. 2022

엄마의 꿈을 이뤄줄게

부모의 꿈을 대신 꾸는 아이들

자려고 누웠는데 둘째가 생뚱맞은 말을 한다.



엄마의 꿈을 내가 이뤄줄게.
엄마 걱정하지 말고 가.



잠을 자기 위해 눕는 시간은 아이에게 죽음을 떠오르게 하나보다. 잠들었다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 봐, 사랑하는 사람을 못 보게 될까 봐 두려운지 가끔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보통은 엄마도 죽느냐, 난 엄마가 죽는 게 싫다, 오래 같이 살아라. 이런 종류의 말들을 하는데 오늘은 좀 다른 내용이었다.


목소리를 떨어가며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말하는데 한편으로는 귀엽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고, 또 안타까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난 지금 갈 생각 없는데.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이 녀석이 내가 가는 날까지 이래라 저래라냐!'는 생각을 하자 당황스러웠다.


율아, 엄마가 엄마 꿈을 모두 이루지 못하고 갈까 봐 걱정돼?

응.

엄마 꿈은 엄마가 이룰게, 넌 네 꿈을 이뤄.

정말! 그래도 돼?

어, 그럼. 내 꿈의 주인은 나라서 다른 사람이 대신 이뤄줄 수 없어. 우리 같이 열심히 노력해보자. 엄마 꿈까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들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 꿈을 대신 이뤄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도 아니고 평소에 나 대신 네가 이루라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렇게 평온한 표정은 처음 봤다.

꿈을 대신 이뤄주는 인형이 아이가 아니므로..



난 의사가 꿈이었다. 그 꿈을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면 자랑스럽고 슬프고 부담스러웠다.

나를 키워준 친할머니는 2살 때 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끔 해주셨다. 그리고 매번 우셨다. 축농증인 줄 알고 가볍게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축농증이 아니라 비암이었다고 한다. 의료사고로 암세포는 더 빠르게 퍼졌고 아빠는 내 동생이 돌잔치를 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날, 자식을 잃은 슬픔과 억울함은 손녀딸을 의사로 만들어야겠다는 할머니의 소원으로 변했다


 '네가 의사가 돼야 해. 그래야 가족들이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지. 우리 집안에 의사만 있었어도 네 아빤 그렇게 안 갔어.'


난 의사가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까지는 의사가 꿈이었지만 중학교에 가서 아무나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꿈을 바꿨다. 그런데 꿈 얘기만 나오면 자꾸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귓전에서 맴도는 것이다.

어느 날 교사 행복 연수를 진행할 때 일이었다. 꿈이 선생님이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선생님은 꿈을 이루셨네요. 저는 사람 살리는 의사가 꿈이었는데 망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정색을 하시면서 말씀하신다. '저는 그 꿈 이뤄진 것 같은데요! 마음을 살리는 일을 하시잖아요. 저는 행복 수업하면서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지금까지 할머니 꿈을 이뤄주지 못한 불효자라고 생각했다. '자식 먼저 보낸 한을 좀 풀어드릴 걸'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하는 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거나 미술 작품을 보거나 예쁜 꽃을 보고도 살고 싶어 진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은 의사만 있는 것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대신 꿈꾸다 보니 내 꿈과 연결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부모들이 있다.

'난 공부 못했으니까 넌 공부 잘해야 돼, 난 악기 하나 다뤄보는 게 꿈이었어. 너도 하나 배우자. 난 안정적인 직업의 남편과 결혼하고 싶었어. 넌 공무원이 돼야 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미래를 이야기하면 그거 하면 깡통을 찬다거나 정신 차리라는 말들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간절하다면 그 꿈, 당신이 직접 이뤄라. 안 늦었다.


공부, 지금이라도 시작해라. 대학에 가야 다시 할 수 있는 공부라면 수능을 보고 학비가 부족하면 방통대에라도 우선 등록해보는 거다. 자격증이 필요하면 따면 되고 기술이 필요하면 연습하면 된다. 

악기? 지금 시작하면 된다. 지금 당장 아이 책상 뒤져서 리코더라도 잡아보자.

남편의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는가? 내가 일을 시작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그 꿈을 이루는 것보다 간절한 내가 움직이는 것이 속 편하고 더 빠를 수 있다.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게 두자. 당신의 꿈은 당신이 이루고.




'엄마는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라고 아이가 물어온다면 '엄마의 생각이 중요해? 넌 뭐가 되고 싶은데? 엄마는 네가 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기쁜 소식은 다른 건 몰라도 넌 이미 하나는 됐어. 너 자신. 다른 게 되는 건 덤이니까 즐겁게 해.'라고 말해주자




뭐라도 되기 위해 애쓰는 나에게 한마디 건네는 것도 잊지 말고.




넌 이미 한희가 됐단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 기쁘게 해 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