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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l 06. 2021

맞아야 말 듣는  인간

사이다 폭탄이 떨어진 날

여느 때와 같은 평온한 저녁이었다.


15살 박시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박시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는 것이 기쁘다. 그래서 목욕을 하러 들어간다는 말을 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편이다.


박시가 욕조 안에 들어가 한 시간쯤 보낸 시간.

남편이 거실 한편에 놓인 사이다를 봤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여러번 말해도 매번 까먹는 박시.




아니 이 자식이!





나는 '아이고, 잔소리가 시작되겠구나. 또 음료수 냉장고에 넣는 것 잊어버리고 들어갔네. 오늘 목욕하고 나서 욕 좀 먹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반응이 좀 달랐다. 갑자기 화장실 문을 세게 두드리며 박시한테 문을 열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남편: 야! 문 열어! 너 또 사이다 먹고 안 넣었지!

아들: 저 목욕해요

남편: 야! 문 열라고! 문 안 열어?

나: 애 목욕하고 나오면 얘기해..

남편: 이게... 빨리 문 못 열어?

아들: 그럼 옷 좀 입을게요

남편: 아니, 지금 열어! 당장!

나: 애가 옷 입고 나온대.

남편: 문 당장 열라고!


남편은 기다리지 못했다. 옷을 입고 나온다고 말해도 옷 입지 말고 문을 열란다. 이때부터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 왜? 옷 벗은 애 앞에 세워놓고 무슨 얘기 하려고?

남편: 지금 당장 말해야 해.

나: 그거 한 시간 전부터 나와있었어

남편: 난 지금 봤어!

나: 옷 입고 나와서 말하면 되잖아. 옷 홀딱 벗고 혼나면 수치심이 생길 수도 있는데.. 하지

남편: 넌 가만히 있어. 끼어들지 마. 내가 지금 혼내고 있잖아!

나: 혼내는 걸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옷 입고 혼내라는 거야. 지금 옷을 벗고 있으니까

남편: 나 네가 계속 이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가 애들 교육 다 망치고 있어!

나: 옷 입고 나오면 혼내. 박시야! 어서 옷 입어. 아이도 인권이 있어. 이거 폭력이야.

남편: 넌 빠져.

나: 난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 난 끝까지 막을 거야.



사이다를 먹고 냉장고에 안 넣은 것이 벌거벗은 상태로 서서 혼날 일인가?

옷을 입고 나온다고 하는데도 왜  벗은 상태에서 문을 열라고 다그칠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15살 사춘기 몸의 변화로 한참 예민할 시기. 그런 시기가 아니어도 옷 벗은 상태로 혼내려는 행동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말로 안되면 맞아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누가 그러냐고 반기를 들었더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논문 2개를 찾아와서 보여줬다. 체벌이 훈육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이었다. 시간이 아까웠다. 난 반대되는 논문을 찾지 않았다. 체벌이 아이들의 정신과 육체를 좀먹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아져 힘으로 약자를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훈육 방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시부모님의 훈육 방법은 남편뿐만 아니라 손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훈육 방식이고 문화니까 따라야 한다는 무식한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폭력의 문화는 잘못된 것이고 바꿔야 한다.


얼마전 폭력 예방 학부모 연수에서 학부모들의 채팅창을 보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기는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 아니라고, 감정 빼고 때리니까 걱정 말라고. 그렇게 맞고 자랐어도 이렇게 잘 컸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감정을 빼요? 로봇인가요?



본인이 잘 컸다고 생각하세요?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문 열라는 얘기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남편이 아이에게 했던 말들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자신이 말했는데도 또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은 자기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내가 우스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냥 주의 집중력이 부족하고 습관이 몸에 붙지 않았을 뿐이다. 한번 말해서 고쳐지면 왜 아직 본인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집안일도 못하는가. 어른처럼 아이도 쉽지 않다.



화가 나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남편은 정신을 차렸다. 아이가 옷을 입고 나오자 2시간 동안 안방에서 길고 긴 훈육을 했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말.

사랑하면 때리지 말고 그 에너지를 모아서 1000번 훈련시켜라.

처음에 왜 이 습관이 필요한지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면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거실에서 떨어진 과자 봉지를 봤다면 그냥 '봉지'라고 말하면 된다.

그럼 다 알아듣고 '아!' 하면서 치운다.

1000번도 되지 않아서 저절로 움직이는 기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네가 인간이야?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너 사람 아니니까 좀 맞아야 돼. 넌 개보다 못한 인간이야. 개들은 훈련하면 말 들어. 내 말이 우습지? 이제 우습지 않게 해 주마, 뼈 속까지 새겨줄게. 잊지 않도록. 이리 와!'


이런 말은 붙이지 마라.


뼛속까지 당신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사랑은 1% 전달되지 않았다.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도 하지 마라.


당신도 변화를 위해서는 맞아야 하는가? 누군가 당신에게 '넌 맞아야 정신 차리는 놈이야!'라고 말했다면 동의하는가?






민법 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2021년 1월 8일, 915조 징계권은 삭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학부모 연수의 채팅창에서는 때려야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말들이 오고 갔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사이다 폭탄을 맞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이다는 꽉 막힌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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