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Oct 24. 2019

울지 않고 안녕할 수 있어요

마음의 키를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가 이제 배가 점점 커지니까 달리기도 느려지고 사랑이랑 바깥놀이하는 것도 조금 힘든데, 사랑이가 터전에 가면 a랑 b랑 또 친구들이랑 실컷 뛰어놀 수도 있고 집에서 못해 본 블록 놀이도 하고 맛있는 밥이랑 간식도 먹을 수 있으니까, 엄마 기분이 참 좋아. 엄마도 사랑이랑 떨어져 있으면 사랑이 많이 보고 싶어서 속상하기도 해. 그래도 데리러 갔을 때 잘 놀고 있는 우리 사랑이 보면 터전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엄마가 아~주 아~주 많이 기뻐.”


지난 목요일 밤.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 가만히 말을 건넨다. 어린이집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 생각이 났었다고, 내내 ‘엄마! 엄마!’ 하는 아이인데 긴 이야기 차분히 듣고 “웅” 하며 답한다. 아직 아기인 것 같은데 벌써 엄마를 헤아려보려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한 마음도 들었다.


다음 날, 아이가 처음으로 울지 않고 등원을 했다. 헤어질 때 조금 울먹이는 기색은 있었지만, 그래도 눈물 한 방울 없이 안녕할 수 있어 고마웠다. 어젯밤 이야기를 기억하는구나. 그런 긴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구나.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의 키를 키워가고 있는 아이였다. 오후에 데리러 가서도 터전에서 형님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울지 않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주말 동안 엄마랑 내내 붙어지내고 나면 터전이 다시 어색해지진 않을까. 일요일 밤, 아이를 재우고 나와 낮잠이불을 챙기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더 많이 안아줘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아침, 터전으로 나서는 길. 유모차에 탄 아이가 큰 거부 없이 주변을 바라보며 간다. 터전에 도착해 깨끗하게 빨아 둔 이불을 이불장에 넣어두고 아이 서랍에 여벌 옷을 넣어 둔다. 그 사이 누나들 놀이하는 옆에 서서 누나들은 뭘 하는 건가,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 색연필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림 그리기보다 누나들 놀이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사랑아, 엄마 이제 집에 갔다가 이따 다시 올게. 재미있게 놀고 있어.” 아이는 엄마가 집에 간다는 말에도 울지 않고 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얼굴에 내가 아쉬워서, 안아주고 뽀뽀를 나눈 뒤 안녕했다. 울지 않고 헤어지는 모습에 오전 돌봄 선생님도 놀란 얼굴을 하신다.


공식적인 적응기간이 끝나니 거짓말처럼 아이가 울지 않고 안녕한다. 기특하고 대견하고, 그래서 고맙다. 지금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등원을 시키기로 마음먹은 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어린이집을 만나 다행이다. 나도 조금 더 내 시간에 집중해봐야지 하고, 아이 등원 후 카페에 와 노트북을 펼친다. 써야 할 글을 쓰고 아이와의 일도 기록한다. 이 시간에 커피와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새삼 놀라운 순간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부지런히 시간을 써야지, 생각해보는 오전이다.




2019. 10. 21

첫 아이 태어난 지 23개월 21일,
뱃속의 둘째는 22주 1일 되던 날.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을 도망치듯 돌아서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