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Apr 18. 2020

너에겐 그것이 사랑.

지긋지긋한 감기와의 기록.


1

지난 11월에는 사랑이가 끝나지 않는 콧물과 기침으로 고생을 했다. 그래도 잘 뛰어놀고 열은 없었는데 마지막주쯤 거진 일 주일을 크게 앓았다. 먹은 게 체해 위 아래로 쏟아내고 그때부터 열이 오르면서 감기증상도 함께 심해졌다. 등원도 못하고 집에서 함께 지냈다. 12월 여행을 코 앞에 두고 겨우 회복. 그래도 옅은 감기는 계속 달고 다녔다. 처음 등원을 하던 10월을 무사히 보낸 편이라 사랑이는 어린이집 다녀도 잔병치레를 안할거라 믿었다. 그 전까지 크게 아파본 적 없던 아이였고 병원에 갈 필요도, 약을 먹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게 어쩌면 내 자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처음으로 긴 감기를 겪고, 일 주일 정도를 앓으면서 병원에 가 진찰을 받고 처음으로 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였다. 가래가 끓어 밤에 잠을 못자고 울며 깨는 아이를 보니 먹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약을 먹인다고 갑자기 증상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고집으로 아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약을 써 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 주일 정도를 앓은 뒤 등원을 했고 여행도 무사히 다녀왔다.



2

12월엔 아파서 등원을 못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송년잔치를 며칠 앞두고, 터전에서 사랑이가 열이 끓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찍 하원을 시킨 뒤 호박죽을 사러가자고 데리고 나와 병원 진료를 보았다. 열이 높았는데 독감인지는 당장 확인이 되지 않아 다음 날 한번 더 갔다. 다행히도 독감은 아닌 열감기. 그리고 약간의 중이염. 기침 콧물도 아주 심하진 않아서 이틀 앓으니 열이 떨어졌다. 저녁에 송년잔치에도 가긴 했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아이들이랑 다 같이 노래 부르는 건 못했다. 이후로 며칠 동안을, 사랑이가 나 때문에 송년잔치 공연을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괴로웠다. 집에서 사랑이 돌보며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송년잔치 이후로 사랑이는 컨디션이 괜찮은가 싶다가 다시 콧물 기침이 심해졌다. 이브에서 성탄절로 넘어가는 새벽엔 열이 또 높아서 성탄절 예배는 드리지 못했다. 아침엔 열이 떨어져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그 때부터 방학이 끝날 때까지 감기로 아웅다웅하며 집콕생활을 했다.



3

1월. 이제 진짜 감기라면 지긋지긋했다. 떨어질 법도 한데 완전히 떨어지진 않는 감기. 그래도 열이 끓지 않는 날은 등원을 시키고 나도 좀 쉬고 그랬다. 지난 주 목요일, 조금 일찍 하원을 했는데 터전에 있을 때 미열이 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밤에 목욕을 시키며 보니 어금니도 하나 쑥 올라와있고 입 안이 군데군데 하얗게 헐어있었다. 이앓이 하느라 컨디션이 안 좋았나보다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 해보니 그게 전조증상.


토요일에 선생님 결혼식을 다녀오고 오후부터 콧물 기침이 다시 좀 심해지는 기색을 보이더니 밤 열 시쯤 부터 고열이 시작됐다. 새벽엔 코피가 나고 구토를 하고 상태가 안 좋았다. 다음 날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가 독감검사를 했더니 a형 독감과 구내염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아이는 열이 끓는 것도 힘들어했지만 입 안 염증이 심해서인지 새벽에 울며 깨서 입을 가리키며 ‘아파 아파’ 하며 울었다. 어찌어찌 일요일은 보냈는데 월요일은 하루종일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꿀물도 우유도 한 모금 하고는 ‘아파’ 하면서 손으로 밀어냈다. 먹은 게 없으니 기력이 없어서 혼자 앉아있지도 못하고 꿀물 담긴 컵도 혼자 못들고 스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그랬다. 그런 와중에도 나한테 커피(실은 배고파서 몰래 시킨 햄버거세트의 콜라)를 먹여주는 사랑이었다. 며칠 전엔 내가 누워서 ‘끙’ 하는 소리에 “허 리 가 아파?” 하고 물어보던 아이. 아빠도 알아채지 못하던 걸 어찌 알았나모른다. 자기 아픈 중에도 엄마 챙겨주는 게 얼마나 찡했는지.


새벽에는 갑자기 좀 나았는지 아빠랑 이것저것 먹는 소리가 났는데 나중에 거실로 나가보니 나한테도 자기 미역국을 떠 먹여주었다. 자기 먹는 미역국은 아빠한테 달라고 하고, 엄마 아빠한테는 자기가 번갈아가며 떠 먹여준다. 내가 나오기 전에도 계속 그렇게 아빠를 먹여주었단다. 그 때 알았다. ‘맛있는 걸 떠 먹여주는 것이 이 아이에게는 사랑이구나.’ 하고.



4

아무리 펄펄 끓는 고열도 이틀 밤을 보내고 나면 뚝 떨어진다. 서 너번 정도 되었나. 확신이 생겼다. 며칠 후 다시 열이 올라 병원에 한번 다녀오긴 했지만 사랑이는 금방 떨쳐냈다. 그리고 사랑이가 나아질때쯤, 긴장이 풀렸는지 나와 남편에게 독감이 옮겨왔다. 지독하게 몸이 아프긴 했다. 병간호의 고단함이 더해져 더 그랬으리라. 그래도 다행히 어머님이 와 도와주신 덕에 약 먹지 않고도 버틸 수가 있었다. 등원 시작과 함께 감기로 호되게 고생했던 겨울. 지겹긴 했지만 이렇게 한번 다 앓고 지나갔으니 다음 겨울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이의 몸도 감기와 함께 또 한번 자랐을 테니.



2020.01.07.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보면 그저 물 흐르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