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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y 02. 2020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보면,



 사랑이와 목욕시간 중. 양치를 봐주느라 쪼그리고 앉았더니 오로가 바닥에 흘러나왔다. 그것도 모르고 일어서서  사랑이 칫솔을 헹구고 있는데  사랑이가 "엄마 뭐가 묻어써" 하고 바닥을 가리킨다. 바닥을 보니 피가. 당황했지만  사랑이가 놀랄까 의연하게 "응~ 이거 물로 닦으면 돼" 하고 샤워기를 틀어 얼른 흘려보냈다. 그랬더니  사랑이가 "엄마한테 빨간섁이 나와서  사랑이가 걱정스러워써" 말한다. 이렇게 나에 대한 걱정까지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니.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면서는 내 오른쪽 팔에 있는 물방울 타투를 가리키며 "엄마 팔에도 비가 오는 거 가태" 하고 아름다운 말도 해 주었다.


 오늘 아침엔 밤새 기저귀에 소변 한 번 보지않고 "쉬. 나올꺼가태" 하더니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팬티를 입고 갔다. 하루 종일 오늘 어땠으려나 괜히 긴장했는데, 돌아온  사랑이를 보니 아침의 그 팬티를 여전히 잘 입고 있더라. 집에서와서는 긴장이 풀렸나(?) 팬티와 바지에 쉬를 해버렸지만 그렇게 긴 시간 팬티를 입고 있던 건 처음이라 놀라웠다. 저녁시간엔 목욕 중에도 목욕통에서 나와 소변을 보았고 자기 전에 화장실 가자고 하니 자연스레 화장실로 가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는 잠자리에서 처음으로 팬티를 입고 잔다. 자기 전에 아빠와 탄산수를 들이켜 충분히 이불에 실수를 해버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스스로 선택한 걸 믿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보면 엄마보다 더 훌쩍 크게 자라있는  사랑이가 되어있겠지. 어쩐지 쓸쓸한 마음도 들면서, '조금 더 천천히 크면 좋겠다' 마음으로 소리치는 밤이다.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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