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남긴 무거운 마음들
마스크 대란 소식을 들은 뒤에는 어떻게 마스크를 구할까 하는 걱정보다도 산더미처럼 쌓일 쓰레기가 근심스러웠다. 마스크 겉포장 비닐, 고리에 달려있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 마스크 본체까지. 마스크 한 개만 놓고 보면 이게 뭐 대수인가 싶은데 전 국민이 이걸 매일, 언제가 될지 모르는 저 먼 날까지 계속해 버린다고 생각하니 근심이 밀려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하루 건너 하루씩 식재료와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나였다. 포장 박스, 보냉팩, 완충용 비닐, 에어캡 등의 쓰레기가 버리고 버려도 또 생겨났다. 나는 마트와 시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을 핑계로 지속적으로 포장 쓰레기를 쌓아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며 노력하던 나다. 포장재가 나오는 배송 서비스보다는 장바구니를 생활화하며 장을 봤고 가급적이면 비닐 포장된 제품은 사지 않았다. 죽 하나를 포장해도 스텐 통을 챙겨가고 배달 음식은 쓰레기가 많이 나오니 자제하는 편이었다. 헌데 코로나가 터지고 둘째 출산이라는 상황이 겹치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재질도 모양새도 다양한 쓰레기들이 쌓이고 또 쌓였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이 마트에 가지 않게 하고 매일의 끼니를 집에서 해결하니 집 나간 입맛이 배달 서비스를 불렀다.
‘일회용품은 빼고 음식만 가져다주세요’
쥐꼬리만한 양심으로 주문 요청사항에 메모를 적어보지만, 그래봤자다. 일회용 포크나 물티슈가 없어도 음식이 담긴 포장용기가 모두 플라스틱이었다. 다 먹고 나면 배는 헛헛한데 쓰레기가 이만큼이다. 다음엔 나가서 먹을까 싶으면서도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이 밖으로 향하는 발길을 잡아두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미세먼지가 안 좋을 때에도 쓰지 않던 마스크를 혹시 모르니까 쓰고, 늘 가던 마트를 혹시 모르니까 안 가고, 아이가 좋아하던 시장 안 호박죽집을, 물놀이 후 식혜 먹는 즐거움이 있었던 찜질방을, 종종 그림책 구경 가던 서점을,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에 들르지 않게 되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면서도 진정되지 않는 상황은 <혹시 모르니까>라는 이름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알람처럼 아침이면 재난문자가 오고 오후에도 수시 때때로 ‘몇 번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우리 집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불안이 단단해졌다. 그러니 다시 또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배달을 시키고 그렇게 쓰레기는 늘어가고... 마음은 또 불편한,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이게 다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빚이구나 생각한다. 나의 편리함을 위한 것이 아이들 세대에 고스란히 전해져 그들이 처리할 짐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쓰레기야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것도 이제 둘이나 되다 보니 아이들의 환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제품 생산을 위해 공장이 가동되고 공기가 오염되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이 일회용으로 사용된 뒤 쓰레기가 된다. 타지 않고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속수무책으로 쌓이다 강으로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이미 나빠진 공기와 나빠진 수질은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의 대가를 증명하고 있다. 아이들과 누릴 맑은 자연이 사라져 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그래서 코로나 이면의 쓰레기가 나는 근심스럽다. 당장은 코로나로 드러나지만 이렇게 오염된 환경 가운데 제2의 코로나가 등장할 것이고 아이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그 많은 쓰레기는 결국 우리의 책임일 수밖에.
오랜만에 아이 하원을 위해 집을 나서니 벌써 봄이라며 개나리와 목련이 피어있다.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나온 아이는 ‘미끄럼틀 딱 한 번만 타고 가고 싶어’ 하더니 놀이터 이곳저곳을 누비느라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바쁘게 놀다 나뭇잎 떼어 아이스크림을 대접해 주기에 ‘암냠냠’ 하고 맛있게 먹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 뒤로 보이는 초록이 예쁘다. 시국이 이러거나 말거나 계절은 묵묵히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 코로나가 심어준 어른들의 불안과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삿된 것에 불과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걱정 없이 이렇게 고운 꽃 보고 나뭇잎 따다 아이스크림 만들어 먹으려면, 우리 어른들이 조금 더 바른 길 따라 살아야겠구나. 생각한다. 당장의 편리함도 좋지만 먼 미래 이 땅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소비가 필요한 시점이겠다. 우리는 오늘만 살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 땅은 나 혼자 사는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불안이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실천적인 삶을 고민해 본다.
2020.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