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성평등 교육>에서 꺼낸 문장, 그리고 메모들.
어느 날 밤, 아이가 물었다. “아빠는 어디 가셨어?”. 아빠가 바빠 아빠와 함께 잠드는 날이 적다 보니,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빠는 일 하러 가셨지.” 말하는 동시에, 내 안에 물음이 일었다. '아빠가 일 하러 간 거면,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경제적 가치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영역, 가사노동. 가사노동은 대개 경제활동과는 별개의 일처럼 여겨지며, 그걸 당사자도 타인도 당연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을 돌보는 일은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나조차도 무의식 중에 나의 노동을 평가절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밖에서 돈 벌고 엄마는 집안일을 한다’는 해묵은 관념을 아이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덧붙였다. “엄마는 집에서 사랑이랑 바다 돌보면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하는 게 일이야. 아빠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 하시는 거고,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지만 일 하는 곳이 다른 거지.”
남자아이를 기르면서 성평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두 아이 모두 남자아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남편에게 ‘남자는 이래야지, 남자가 이러면 안 돼.’ 하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전한 날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듣고 자랐어도 우리 아이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가정에서 바르게 배워야 나가서도 바른 태도로 세상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이 있던 와중에 아이 어린이집에서 이러한 주제의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성평등 소모임이 생겼다. <스웨덴식 성평등 교육>은 이 모임의 첫 책이다. (*기록된 문장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 크리스티나 헨켈, 마리토미치 지음(홍재웅 옮김), <스웨덴식 성평등 교육>, 다봄)
가만히 앉아있는 훈련 못지않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중요하다. P33
경험과 추억을 선물하세요. 선물이라고 해서 항상 물건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보기, 빵 굽기, 공원 피크닉 같은 활동은 아이에게 유익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로 의미가 큽니다. P45
선물포장을 직접 풀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발견하는 과정은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아이가 선물을 열어 볼 때는 시간을 충분히 주세요. 그래야 아이가 선물 받는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P47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면서 그 선택이 당연하다고 말해주세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덜 본다면 더 안정적이고 강한 자존감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P77
여러 역할을 수행하다가 그만두는 연습, 다양한 느낌을 경험해 보는 것은 삶을 위한 좋은 연습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P79
간혹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달거나, 신물을 읽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웃는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P84
우리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우리나 남을 비하하는 발언을 일삼으면 아이들도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게 된다.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셈이다. P85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이처럼 생물학적 성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그런 사고로부터 훨씬 자유로우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여자아이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고,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달라야 한다는 선입관이 아이들에게는 없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P99
다양한 사례와 설루션을 제시하는 이 책은 성역할을 떠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에 대해 알려준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 고정관념들을 알아차리고, 아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 게 좋겠구나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장난감을 대하는 어른들 태도가 아이의 장난감 선택에 영향을 준다. P44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난 한 누나의 손에 들려있던 바비인형. 태어나 그런 걸 처음 본 아이는 너무나 순수한 호기심으로 "이거는 모야?" 하고 물었다. 아이의 취향에 맞는 장난감을 제공해주고 놀이를 하도록 했는데 그걸 보면서 아차 싶었다. 나의 가이드가 어쩌면 아이에게는 제약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성별의 장난감은 처음부터 제공받지 못하는 환경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 이야기에 대해 같은 어린이집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성별에 따른 장난감을 교환해보기로 했다. 나는 아이의 자동차와 분홍색 인형을 바꾸었고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흥미로워하며 자기 맘대로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취향에 대한 존중만큼 다양성을 경험해보는 기회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마세요. ‘음식 앞에서 까탈스럽다’는 말보다 ‘음식을 신중하게 고른다’는 표현이 좋겠죠? P106
아이에게 ‘오늘 뭐 했어?’라고 묻기 전에 당신이 먼저 하루 동안 뭘 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서 대화의 창이 열립니다. P116
아이들과 함께 있는 때는 말하기와 듣기 둘 다 중요하다. 언어적 평등은 우리에게 단어 뒤에 감춰진 아이를 조명할 기회를 주고, 아이들에게는 표현하고 참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P125
‘안돼!’, ‘하지 마!’라는 말을 가급적 하지 마세요. 대신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창틀을 넘어가면 안 돼!’ 대신 ‘밖에서 놀고 싶으면 문을 열고 나가렴’이라고 말하세요. ‘길에서 뛰지 마!’ 대신 ‘천천히 걸어가렴. 아니면 내 옆에서 뛰렴’이라고 말하세요. ‘안 돼’와 ‘하지 마’는 잔소리로 들리기 쉽습니다. ‘안 돼’와 ‘하지 마’가 사라지면 오히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습니다. P136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경쟁해보라고 하세요. ‘어제보다 얼마 더 빨랐지? 오늘은 더 빨리 뛸 수 있을까?’ P144
아이가 점점 더 언어구사력이 좋아지면서, 내가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구나 느낀다. 옮겨 적은 예시들은 생활에 적용시켜보려고 했던 것.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힘들고 아픈 일이 생겨도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참는다 이 때문에 슬픔이 흐지부지 덮여버리는 일이 많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된다. 슬픔의 표현은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며, 훌륭한 자기 인식과 공감 능력을 발전시키는 전제 조건이다. P168
분위기가 좀 무거워지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슬픔과 눈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슬프고 속상할 땐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 주세요. P169
... 여자아이들은 무거운 감정들을 억누르며 속으로 삭인다. 그 결과 자기비판적이 되고 말이 없어진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억눌린 감정들을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표출하고 말썽을 일으킨다. 감정을 표현하는 문제는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어른이 되었을 때도 영향을 미친다. 감정 표현에 솔직해야 몸과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다. P172
며칠 전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와 부딪혀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는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끄럼틀에서 쿵! 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물을 마셨어”라고 말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도 참았다는 말을 듣고, 벌써 감정을 누르는 법을 알아가고 있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부터 '우는 건 씩씩하지 않다'는 관념을 학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도 참았다니 대단하네. 그런데 우는 게 나쁜 건 아니야. 놀라거나 무섭거나 속상하거나 할 땐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기도 해. 다음에도 또 울고 싶은 마음이 들면 참지 않고 울어도 괜찮아. 오히려 참는 게 더 나쁜 거야.” 말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감정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잘하다’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가득하다. 잘하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인정받는지 알기에 자기의 욕구를 희생시킨다.... 아이들이 최선을 다했느냐, 안 했느냐에 상관없이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잘한다는 것은 아이들 정체성의 일부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빠른 속도로 배우게 된다. 잘한다는 말을 늘 듣는 여자아이들은 어쩌다 한 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릴 경우 크게 낙담한다. 더 이상 주변 세계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실패할 수도 있죠.” 하며 항의하는 대신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애썼더라면, 조금 더 멋지게 해냈더라면, 상대의 요구를 조금 더 잘 읽었더라면... 하면서 여전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P179
* 아이의 행동이나 성격을 표현할 때 ‘잘한다’, ‘좋다’ 외에 단어를 사용하세요.
“과자를 만들었다고? 참 재밌었겠네.”
“와, 아주 멋지구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구나.”
“집짓기 할 때 보니 너 참 꼼꼼하더라.”
* 단순히 잘했다고 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 경험한 내용을 설명하게 하세요.
“방 청소 네가 했니? 어떻게 한 거야?”
“부엌 수납장에서 이 그릇들을 어떻게 꺼냈니?”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는 ‘착하다’는 말을 주의해서 사용하세요. 이미 여러 곳에서 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아이가 하는 일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주세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높은 나무에 잘 올라가네.”
“그림 그리고 있구나.”
아이에게 힘들 땐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세요.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나약하거나 못난 게 아닙니다. 용기 없이는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합니다. 도움 요청은 어른들도 잘 못 하는 일인데,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P180
내 안에도 자리 잡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이는 이 부분에 압박을 많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아이의 행동에 ‘잘했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법이 제시되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던 부분들.
아이와 논쟁하거나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해질 수 있도록 연습하세요. 아이를 붙잡지 말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세요. 아이 위에서 내려다보지 말고 아이 키에 맞춰 자세를 낮추세요.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말고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세요. 낮은 목소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미움이라는 감정을 없애 줍니다.
아이와 대치 상황에서 자신의 눈을 보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겁이 나거나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눈 맞춤이 아주 불편한 경험일 수 있습니다. P209
아이랑 얘기할 때 음경, 음순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세요. 어른들이 주저하면 아이들은 그 말이 나쁜 뜻이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P228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손, 발 등 자신의 몸을 장난감 삼아 놀기도 합니다. 그럼, 음경이나 음순도 다른 신체 부위와 똑같은 규칙이 적용될까요? 아이들에게 누가 자신의 몸을 만져도 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만져도 되는지를 정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려주세요. 네 몸의 주인은 너 자신이라고요! P269
평등을 이루려면 남성과 여성은 정반대이며 서로를 보완해 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에 의의를 제기해야 한다. 성별과 무관하게 개개인은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다고 보는 데서 평등은 시작된다. P284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정리해주는 한 문장. 성별을 떠나서 개인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와 관점이 평등을 이루는 기본이 되는 듯하다. 아이에게도 다양성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도록, 나의 언어를 잘 가꿔 나가야 하겠다.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