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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8. 2019

매일을 도망치듯 돌아서는 일

본격, 어린이집 적응기

아이 혼자 어린이집 생활을 한 지 오늘로 다섯째 날. 어린이집에 가면 내가 자길 두고 간다는 걸 알아서 근처 골목에만 다다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 며칠 전에 사 준 세발자전거에서 오늘도 탈출하려던 찰나, 같은 반 형아가 인사를 건네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문 앞에서 또다시 안 가겠다 울상이 되어 버둥거렸고 그런 아이를 안고 “우와 현관에 똑딱똑딱 시계 보러 가자” 하며 신나게 계단을 오른다.


아이는 신발 벗는 것조차 싫어한다. 신발 벗으려고 품에서 떨어지면 엄마가 바로 가버릴까 겁이 나는 모양이다. 그런 아이의 신발을 겨우 벗기고, 내 신발도 후다닥 벗고 아이가 머무는 방으로 간다. 선생님들과 “안녕하세요~” 밝고 높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 보지만 이미 울음이 터졌다. 가방에서 잠옷을 꺼내 아이 서랍에 넣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도닥여주는데 진정이 되질 않는다. 옷도 벗지 않겠다고, 간식도 먹지 않겠다고 한다. 선생님한테도 안 가고 엄마 품에만 있겠다고 한다. 겨우 아이 옷을 벗기고 간식 식탁 앞에 앉히고 “우와 포도다! 우리 포도 먹어볼까? 달콤 포도!” 하며 밝고 높은 목소리로 제안을 해 본다. 포도를 손으로 집길래 먹으려나 보다, 했더니 내 입에 하나 넣어주고 다시 으앙 하고 운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 매달리는 아이에게 밝고 높은 목소리로 “우와 이거 맛있겠다”, “우와 이거 뭐지?” 하며 연신 즐거운 얼굴 하기. 엄마가 이따 금방 데리러 올게, 재밌게 놀고 있어!” 하며 도망치듯 어린이집 문을 빠져나오는 무거운 걸음. 눈에서 눈물이 또륵 흐르는 걸 누르면서 골목으로 뛰어들어가는 부산함. 엄마에겐 그런 일들이 힘들다.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돌아선 첫날, 가장 많이 울었다. 아이도 나도 그랬다. 그 전 까지만 해도 어린이집에 가면 엄마랑 함께 놀았는데, 갑자기 엄마가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함께 다닌 일주일을 즐겁게 보냈고, 틈틈이 “이제 어린이집에서 엄마 없이 혼자 놀 수 있는 거야?” 물으면 당당히 “웅!” 하기에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다 생각했는데, 당연히 힘들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막상 문 앞에서 떠나는 나를 보며 울고 불고 손을 뻗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찢어졌다. 그 날부터 도망치듯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일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은 간식이 사과라서 사과에 정신이 팔린 틈에 나왔고 (이 날도 그 좋아하는 과일을 엄마 입에 먼저 넣어주며 가지 말라던 아이다) 주말을 지나고 간 셋째 날. 다시 많이 우는 아이를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넷째 날인 어제는 어린이집 골목만 봐도 도망가기 시작하는 아이를 들쳐 안고 등원을 시켰다.


아이를 등 뒤에 두고 돌아서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집에 가면 미친 듯이 집안일만 해 댔다.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묵은 옷을 솎아 내 정리하고 주차장에 내려가 카시트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고 돌아오면 주려고 따뜻한 된장국을 끓이고... 바쁘게 움직이면 괜찮겠지 했지만 문득문득, ‘놀이터 나들이 갈 때 선생님 손 잘 잡고 갔을까?’, ‘엄마 생각나서 울진 않으려나?’, ‘점심은 맛있게 먹고 있을까.’ 생각이 나서 건조기 앞에서, 가스레인지 앞에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혼자 훌쩍거리고 울었다.




할머니가 와서 봐 주실 때 말고는 엄마랑 세 시간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 ‘어린이집 가고 나면 나도 이제 내 시간을 좀 가질 수 있겠지?’ 들뜨기도 했지만, 그동안 우리 둘이 복닥거리며 보낸 찐득한 날들의 농도만큼, 떨어져 지내는 게 예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위안은 데리러 갔을 때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 어젠 오후 간식 수제비를 두 그릇이나 먹었다고 한다. 품에 안고 “우와 수제비를 두 그릇이나 먹은 거야?”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엄마!” 한다. 수제비 먹을 때 엄마 생각이 났다는 뜻이다. 아침부터 하루를 되짚어 이건 이건 어땠어? 하면 그때마다 찡그리거나, 힘차게 고개를 젓거나 엄마 엄마하고 안기며 당시의 감정을 표현한다. 말로 설명은 못해도 다 안다. 응, 그랬구나.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며 더불어 속상한 내 마음도 함께 달랜다.




나랑만 있으면 경험하지 못할 놀이들, 내가 아닌 친구들, 형, 누나, 선생님들과 관계 맺기, 스스로 하는 습관 들이기. 그런 것들을 익혀나가고 있다.


담당 선생님은 아이가 비교적 크게 힘들어하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해주신다. 울다가도 그림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놀이터에서 바깥 놀이를 할 때면 집중해서 즐겁게 잘한다고. 선생님한테 나뭇잎 뜯어 선물해 주면서 조금씩 정도 붙여가는 모양. 선생님이 찍어 보내주는 사진 속 아이 모습이 낯설면서 대견하다.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더 크면 초등학교로, 중학교로, 대학교로. 내 자리를 조금씩 다른 세계로 내어주게 되겠지.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어린이집 적응을 잘해나가야 내년의 우리 집 일상도 조금 수월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적응기를 보내고 있다.


오늘은 아이가 낮잠 자고 일어나 간식 먹고 오후 놀이까지 하는 날. 공식적으로 어린이집에서 혼자 온전히 하루를 보내보는 날이라 그런지 괜히 초조하다. 아이 데리러 가기 전에 따뜻한 음식을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 이따 아이를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꼭 껴안아줘야지. “잘 놀고 있었어? 보고 싶었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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