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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8. 2019

처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

정성을 다해 이름표를 바느질하는 마음이란.


오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첫날이었다. 아이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나만 며칠 전부터 싱숭생숭했다. 우비도 새로 사고 앞치마도 사고 낮잠이불도 사고. 하나씩 준비물을 챙기면서 기분이 묘했다. 이제 어린이집에 가니 잘 적응만 하면 나도 여유 있는 낮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하는 숨길 수 없는 설렘과 잘 적응할 것 같긴 한데 나랑 떨어져서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뒤섞였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랑 잘 놀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졸려우면 ‘엄마, 엄마’ 하고 날 찾는다는 아이였다. 조금씩 더 언어 표현을 잘하게 되면서 자기 마음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게 대견하면서도 짠해서, 자꾸만 어린이집에 혼자 두고 문을 나설 때, 아이가 엄마 하고 울면 어쩌지. 그때 나도 왈칵 울어버리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다 진짜로 눈에 눈물이 고여버리는 나였다.



어제는 아이 이불이며 앞치마, 두건, 우비에 하나하나 천으로 된 이름표를 바느질했다. 바느질을 하다 이름표가 살짝 울거나 비뚤어지면 실을 뜯어 처음부터 다시 했다. 이름표야 그저 이름표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눈물바다라도 나면, 그게 비뚤게 달아 준 이름표 탓일까 봐. 뭐 하나라도 아이의 시작에 구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정성을 다해 이름표를 바느질했다. 어쩌면 아이가 적응하는 데 있어 실질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에 그런 불안한 마음을 바느질에 풀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알 턱 없는 아이는 새벽 나절부터 퀭한 눈의 나를 흔들어 아침을 재촉했다. 좀비처럼 일어나 아이와 함께 바나나와 시금치, 우유 약간을 넣어 아침주스를 내리고, 빵을 데워 올리브 오일 뿌린 발사믹 식초에 찍어 먹었다. 빵을 먹을 땐 먹더라도 영양가 있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달걀 스크램블도 해 주었지만 아이는 예상대로 빵만 발사믹에 콕콕 찍어 먹었다. 치즈 한 장을 더 먹이고, 느리게 느리게 아침 식사를 했는데 아직도 등원 시간까지 한참이 남았다. 물놀이도 시켜주고, 휴대폰으로 삐뽀 동영상도 보여주고. 그런데도 시간이 안 갔다. 아이 옷을 갈아입히는데 기저귀 벗더니 도망을 치고 바지 입어야 하는데 도망을 치고 그런다. 나도 준비를 해야 하니 마음은 급하고 몸은 피곤한데 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래도 워낙 일찍 일어났던 탓에 생각보다 이르게 집에서 나왔다. 여덟 시 반쯤 되었던가. 그 시간의 동네 아침 풍경이 참으로 생경했다. 초등학생 저학년 즈음,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이렇게 학부모의 반열에 올라서는구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신나는 얼굴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유모차를 밀었다.


골목을 꺾어 들어가는데 어디서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삐약* 안녕하세요! 사랑아 안녕! 오늘 역사적인 날이다!” (*삐약: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 엄마 아빠는 이름 대신 별명을 사용한다. 나의 별명은 삐약. 어릴 때부터 작은 체구로 친구들이 생쥐, 병아리, 참새 비슷한 것에 날 비유하던 것에서 따 왔다) 차 한 대가 우리 앞으로 미끄러져 오면서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 얼굴이 보였다.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 엄마였다. 그 인사에 얼마나 마음이 환해지던지. 오늘 잘 보낼 수 있겠다 하는 예감이 들었다.


터전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미리 와 있던 세 명의 형 누나들을 만나고 그들의 폭풍 같은 관심 속에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골목을 걸을 때만 해도 조용하던 주변이 아이들 소리로 가득 찼다. 여태 아이와 ,   있던 일상이 변화하는 소리였다.


혼자 주방놀이 도구로 냠냠 먹는 흉내만 내던 아이는 형 누나들이 가져다준 종이와 사인펜으로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블록도 끼워 맞춰 보고, 처음으로 스스로 물병을 들어 컵에 물 따라 마시기도 했다. 그게 너무 신났는지 물을 일곱 잔은 족히 마셨다. 등원하는 아마*들하고도 선생님들하고도 조금의 거리낌 없이 자기 할 거 하며 노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완전히 편안해졌다. (*아마: 엄마 아빠를 지칭하는 말) 오전 놀이로 근처 놀이터에 갔을 때는 완전히 자기 세상. 아빠가 잠깐 와서 인사를 했는데 아빠는 안중에도 없고 모래놀이에만 전념. 놀이터 언덕을 연신 오르내리고 형님들만 오르는 사다리에 오르고 놀이터 꼬마 변기에 앉아 쉬도 하고 처음 보는 물컵에 시원한 물도 마시며 여기저기 신나게 뛰 놀았다. 그리고 터전으로 돌아가는 길에 체력이 방전되어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첫날, 오전 일과가 끝났다. 나도 잠이 막 쏟아지는데 허기가 지고 지쳐 유모차에 아이를 재우고 점심으로 초밥을 먹었다. 식당 의자에 앉자마자 긴장이 탁 풀리면서 한숨이 휴우우. 고생한 나를 위해 후식으로 딸기청 들어간 딸기 우유도 마셨다. 집에 왔는데 남편이 오후까지 여유가 좀 있어 아이를 눕힌 뒤 오전의 일들을 나누고, 낮잠에서 깬 아이 점심 먹는 걸 보고 잠들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건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한 일이다. 낮잠 한 시간으로 그걸 풀기에 임산부의 체력은 너무나 모자란 것. 그래도 새벽부터 나가 일하고 온 남편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 기를 쓰고 일어났다. 물론 그래도 누워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제대로 아이케어를 하진 못했지만, 여보 오후 출근 후에는 기를 쓰고 나가서 아이와 장난감 바꾸고 장 보고 저녁거리도 사 와 먹었다. 먹은 걸 치우고 장 본 것 손질하고 내일 아침 주스 거리 손질하고 음식물 쓰레기 비우고 마른 설거지거리 치우고... 싱크대 앞에서 왜 이렇게 일이 안 끝날까 지겨워하며 저녁을 보냈다. 내가 집안일이 지겹듯 지금 나가 일하는 남편도 바깥일이 지겹겠지. 내가 십 분이라도 더 누워 쉬고 싶은 만큼 그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방을 정리하고 아이를 씻겼다.


하루가 길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이 잘 때 바로 같이 쓰러져 자야지 했는데, 어느새 한 시가 다 되어간다. 내일은 아이가 과연 몇 시에 일어나 주려나. 내일은 오늘보다 천천히 아침을 열고, 오늘보다 더 편안하고 밝은 마음으로 오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고 싶다. 내일도 오늘처럼 터전에서 신나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길. 아이의 잠든 얼굴에 대고 하늘에 기도를 올려 보내는 새벽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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