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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07. 2024

환해지고 싶어서 운다.


전날 아이들과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온 터라 온몸이 무거운 아침. 겨우 일어나 입시생인 둘째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여름캠프에 가는 첫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줘야 해서 양치만 하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매일 가는 빵집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 먹고 싶었는데 세수를 안 해서 냉장고에 있던 레쓰비 하나를 대신 들고나갔다. 평소 같으면 빵집 앞에 차를 대고 아이에게 부탁했을 텐데, 갑자기 충전이 되지 않는 휴대폰 때문에 잔뜩 성이난 아이가 오만상을 쓰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어 입도 뻥긋 안 했다. 안 그래도 다녀와서 AS 맡기면 금방 고칠 텐데 뭘 그렇게 한숨을 쉬냐고 한마디 했더니 입까지 대빨 내밀고 푹푹 거린다.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요즘 애정하는 리빙스턴의 <Architect>를 틀었다.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겠다며 시원하게 내 지르는 목소리는 아이의 한숨 소리를 덮기에 딱이다.


신호대기 중에 고개를 돌리니 환갑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발목까지 오는 도트무늬 원피스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총총히 걸어가고 있다. 손차양으로 가리기 힘든 햇볕인데 표정 까지도 곱다. 친구를 만나러 가시는 길일까?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으신가? 단정한 매무새로 시작하는 누군가의 하루에 괜히 맘이 일렁인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좀 먼 인간이라, 아니 그보다는 게으른 축에 속해서 단정한 차림새의 사람들을 보는 건 언제나 흥미롭고 조금은 경이롭다. 직장을 다니든 다니지 않든, 나이가 적든 많든, 매일 아침 일어나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단정히 빗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걸 시작할 에너지가 없어서 한 달에 절반,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날을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속으로 응차차 기합을 넣어야만 일어나지는 내 몸뚱이에 비하면 말이다. 그렇게 일어나 앞치마를 매기 전까지, 앞치마를 매고도 쌀을 씻기까지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 종종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그걸 읽기 위해서라도 후다닥 해치우는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왜 이렇게 매번, 자주, 빈번하게 처지고, 무너지고, 뭉개지는지. 왜 남들은 척척 해내는 일도 나는 이를 악 물어야 겨우 해내는지. 요즘 이런 나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3일 이상을 넘기지 못하는 코딱지 만한 내 삶의 의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데,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데 많이 읽고 쬐-에-금 쓰는 이상한 나에 대해서. 그러면서 글쓰기 모임을 하고 소설을 쓰겠다고 괴로워하는 진짜 진짜 이상한 나에 대해서. 나만의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스물한 살 미국청년의 목소리에 반하는 기이한 내 마음에 대해서(나는 이제 마흔이 넘었으니까).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같은 노래를 몇 시간이고 연속재생해서 듣는 괴팍한 패턴 뒤에 따르는 무기력과 우울에 대해서. 외로움이 싫지 않으면서 그것이 마치 실패에 닿아 있는 것 같아 혼자 있을 때조차 종종 얼굴이 붉어지곤 하는 나에 대해서. 뭐 하나 똑 부러지는 것이 없어서 이도저도 아닌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나에 대해서.


썩 좋은 징조는 아닌 것 같아 생각을 멈추고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배고프다며 울다가도 엄마가 밥을 차려주면 숟가락을 집어던지며 더 크게 울던 원도(최진영/원도)처럼 나는 책을 던지며 울어야 하나? 그럼 좀 나아질까. 어쨌든 나에게 사랑이 필요하다는 호소는 나도 원도만큼은 한 것 같은데. 우묵한 마음은 왜 채워지지 않고 자꾸만 더 깊이 파이는 건지. 책 따위로 가난한 마음을 채우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울고싶어진다.  마음에 숭숭 구멍이 난다.


무너지지 않는 하루의 리듬. 그런 걸 갖고 싶다. 이불을 툭툭 털고 일어나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깨끗하게 씻고 간소하지만 맛있는 아침을 먹고 단정한 차림새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우울 같은 건 근처에도 못 올 말간 얼굴로 거울 앞에 서고 싶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나 별로인 인간인 건지. 그걸 잘 알아서 내가 가진 별로인 것에 저항하고, 그러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고, 응시하고, 수 없이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답을 찾으려 애쓰는데, 사는게 왜이리 불편해지기만 할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문제인 걸까. 그렇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인걸.  

   



저녁 8시. 여름캠프에 갔던 첫째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왜?”

“핸드폰 충전이 돼.”     

기쁨과 환희가 넘실거리다 못해 흘러넘치는 목소리다. 핸드폰이 뭐라고.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을까. 내 핸드폰은 충전이 기막히게 잘되도 나는 기쁘지가 않은데.


첫째는 핸드폰 충전이 잘돼서, 둘째는 피아노를 열심히 쳐서, 셋째는 직접 고른 소설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넷째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리코더로 완주할 수 있어서 웃는다. 웃는 아이들은 예쁘다. 나도 그렇게 웃고 싶다. 그렇게 환해지고 싶어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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