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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자 Jan 23. 2022

관계의 책임

손을 움켜 쥘수록 모래알은 빠져나가기만 하지

순식간에 27살이 되었다. 아직 내 마음은 24살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다 보니까 나이 드는 게 좀 두렵기도 하다. 나이만큼 내면의 성숙함도 커졌나 질문을 해보아도 사람이 비관적이고 예민하게 바뀌었다 뿐이지 그다지 농익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세월을 지내보며 지나간 시간에 결별을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하나 둘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관계에 대한 책임이 어느 관계에서만 유효한 걸까? 부모 자식 간의 책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친구, 애인, 형제자매의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긴 하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인 관계든 책임은 필요하진 않지만 그 책임을 무릅쓰고 관계를 이어 나가려는 사람을 보면 그래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 같아서 믿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직장으로 비유해보면 편하다. 언제든 힘들면 퇴사하려는 사람은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어떤 일을 겪든 묵묵히 해결하려고 하며 오래 다닐 것 같은 사람은 신용을 얻는 것처럼 사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인상을 남긴다.


 여태 인간관계에 있어서 쉽게 손을 놓지는 않았다. 회피형도 불안형도 아닌 형적인 안정형인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놓고 가버린 경험이 많은 지금은 그들처럼 회피형이   아닐까 모르겠다. 관계를 지속시키며 감정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손쉬우니까. , 이제는 그런 인간관계가  삶에 그다지  가치가 아니니까  이뤄지지 않는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같다.  삶의 중심이 관계에 따르는 정서적인 교감보다는  감정과  존재가치 자체이니까 예전보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것들은 금세 사라질  있는 실체 없는  좋은 개살구 같다.


전에내가 좋아하는데  마음을  마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서  놓아버린 사람들이 이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리운 마음에 증오하기까지 했다. 내가 어릴  받지 못한 애정을 남들에게 주는 것이  가치라고 여겼보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만의 결핍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일까. 어려운 형편 속에 살았던 인간은 금전적인 가치가 크다고 느낄 것이고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애정에 목말라 있어서 쉽게 사랑에 빠지는  같기도 하다.


갈수록 맺고 끊는 관계가 명확해지는데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끊어내는 관계가  많아지고 있다. 스무 살이었을 적 나는 하루라도 당장 만날 친구가 없을  놀이터 그네에 앉아 슬퍼했던 반면, 지금은 가볍게 술 한잔할 수 있는 친구마저 없는데  대수롭지 않다. 친구가 전부였던 어린 세상은 이제 끝난 듯한 느낌이다. 결혼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것처럼 나도 나중에는 결혼을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끔찍하다). 지금은 내가 완벽한 타인과  집에서   혹은 수십 년을 같이 살아갈  있을지 상상도  된다.


요즘은 YOU ME HER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한 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두 명의 애인과 셋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관계의 존속에서부터 어렵다고 느낀다. 예로 둘이서 감정적으로 서운한 것이 있을 때 다른 애인에게 털어놓으며 친밀감을 형성하면 혼자 남겨진 애인은 당연히 소외될 것이고 감정은 안 좋은 쪽으로 붉어질 것이다. 그럼 이 관계를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누구에게 한탄하고 조언을 들을 수 있으리. 폴리아모리는 성숙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면 정말이지 환상 속의 관계인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실수와 깨우침의 연속에서 성장하는 것인데 누구의 말이 더 현명한 것인지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면 상처만 주고받으며 끝날 관계라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간이 사랑에 빠지면 현명한 사람이더라도 그릇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인생 2 회차라면 데자뷔 같은 상황이라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우주의 티끌 같은 시간을 살면서 선택할 당시에는 최선은 판단이라고 믿는다.


떠나는 인연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했던 20대 초반, 관계를 흑백으로 나눠 끊어내 버리기만 했던 20대 중반, 이제는 말을 가려서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지 않도록 모면하려는 자세로 어중간한 인연들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하려 들면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나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기에… 같이 성장통을 겪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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