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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자 Jan 08. 2022

4. 또 다른 희생자는 두고 볼 수 없다

베트남 취업 재도전!



연수생 대부분 한국으로 귀국하자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온 것이 너무 분했다. 취업계를 낼 생각으로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등록했기에 다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와 졸업을 앞두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것이 너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한다던 엄마의 말에 앞으로 쏟아질 엄마의 잔소리가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출가하고 싶었다. 나는 몇몇 연수생들과 목소리를 합쳐 국민신문고에 투고할 계획을 세웠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화가 났고, 또다시 이 프로그램이 재개되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알선 능력도 없는 이 운영기관이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들로 돈벌이 사업을 하겠지.


같은 운영기관에서 주관하는 해외취업 박람회가 개최된다길래 방문해보았다. 하노이 취업 박람회에서 뵀던 분이 부스에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나눠 봤더니 채용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회사 홍보 차원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런 모양이었다. 취업박람회에서 채용을 하는 회사들은 소수이고 채용 의사가 있더라도 채용이 주목적이 아닌 듯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취업박람회를 주체하면 운영기관은  억대의 예산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이것이 예산을 타먹기 위한 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맞는 연수생들을 모아 미팅룸을 잡고 투고문을 써내려 갔다. 신문고에 투고한 뒤에는 기자님과 인터뷰를 했고 뉴스 보도까지 계획했다. 다행히 부산시 민원과 달리 신문고는 익명성이 잘 보장되었다. 운영기관에서는 연수생 한 명씩 불러서 면담을 하였고 베트남 취업이든 국내 취업이든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베트남에서의 안 좋은 기억 탓인지 몇 명 연수생은 다시 베트남으로 가기 싫다하며 국내 취업을 했다. 나머지 연수생은 다른 K-move를 지원하거나 아예 다른 국가로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스스로 베트남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 경우에는 당장 취업을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고 더불어 졸업이 미뤄지기 때문에 다시 베트남 취업을 선택했다.


다시 베트남에 가기 전에 일본에 있던 오빠를 만날 빌미로 좋아하는 테판야끼 맛집을 가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다. 사실 한시라도 학교와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전에도 이 테판야끼 가게를 다시 찾아간 적이 있는데 이틀 전에도 예약이 되지 않았어서 이번에는 한국에서 국제전화로 예약하고 갔었던 터라 더 설레었다. 내가 음식을 이렇게 밝히는 사람이 아닌데 먹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맛있었던 가게였다. 백수는 절대 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고기라 내가 한 턱 크게 쏘겠다며 오빠를 데리고 갔지만, 구두세인 오빠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쫑알거리는 바람에 고기 맛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에는 꼭 혼자 가야지. 


운영기관에서 발급을 도와준 비자로 나는 호치민으로 갔고, 알선업체를 소개 받았다. 한 달 동안 투룸을 계약해서 지내며 알선업체를 통해 구인회사를 소개받아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을 보는 날 외에는 학교 시험 대체 과제를 하고 한낱 다름없는 백수생활을 했다. 룸메 언니와 매일 밤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심심하면 카페에서 글을 끄적였다. 베트남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뒤 일본어 시험을 봐야 된다는 빌미로 친구 만나러 혼자 한국에 잠깐 다녀오기도 했다. 일본어 시험은 핑계였을 뿐이지만 운이 따라줬는지 다행히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P.S. 뉴스 보도 이후 운영기관의 해외취업사업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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