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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자 Mar 15. 2022

6. 갑자기 베트남 입국 거부라니?!

코로나로 인한 입국 거부



코로나 때문에 좀 불안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입국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동기와 함께 호치민 떤셔녓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던 동안 베트남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베트남 정부는 갑자기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중단시켰고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베트남 현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 대기하고 나자 한국 대사관에서 직원이 나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먼저 추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저녁 비행기를 예매하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입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동기와 나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내가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회인데 놓치고 돌아갈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결항이 되었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화를 내며 대사관 직원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은 제3 국가로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자 다시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그 사이 베트남 현지인들만 무사히 입국 절차를 마치는 것을 보고 역시 자국민부터 챙기는구나 생각했다. 베트남 입국을 하려던 한국 사람들은 비자를 받으려고 했지만 대사관 직원의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지 못한 한 사람이 직접 나서서 비자를 받아오자 사람들은 대사관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입국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도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새벽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왔던 터라 힘이 다 빠져 있었다. 대사관에서는 물과 작은 샌드위치를 제공해주었지만 반나절 동안 바깥공기조차 쐬지 못하던 나는 잠깐이라도 죽어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사관 직원이 다시 와서 제3국으로 경유하는 길도 막혔다고 하자 사람들의 불만은 거세 졌다. 대사관 직원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 현재로써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돌아간다고 하였다.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서는 자칭 방송국 PD가 있었고 이 상황을 촬영하면서 대사관 직원에게 폭언을 쏟기 시작했다. 그 사이 2주 격리를 하면 베트남에 입국할 수 있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게 시설 격리인지 자가격리인지 조차 알 수 없이 입국 절차가 진행됐다. 난 뭐가 됐든 지금 입사를 하지 않으면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취업 준비가 더 무서웠기 때문에 내 선택지에는 격리밖에 없었다. 


"습~하아~"


입국 절차를 마치고 차를 타러 드디어 건물에서 나왔다. 바깥공기를 크게 들이쉬었고 이때 들이켰던 습한 동남아의 공기는 옥살이하다 나온 죄수의 기분을 잠깐 느끼게 해 주었다. 밴에 짐을 싣고 흰 방호복을 입은 베트남 직원이 운전해서 입국한 사람들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차에 타고 있는 내내 사람들은 장기 팔리러 가는 것이 아닐까 가지고 있던 걸 다 뺏기고 생매장당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하기만 했다. 껌껌한 밤중 우리는 어느 학교 앞에 내려졌고 베트남어로 써진 영문 모를 종이를 받았다.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없어서 이 종이가 무엇인지 뭘 써내야 하는 건지 구글 번역기로 알아보려던 찰나 한 여성분이 통역을 도와주셨다. 알고 보니 베트남인 승무원이셨는데 비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다 우리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이다. 


체열을 잰 뒤 서류를 작성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당일 나온 공문 때문에 아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베트남 정부의 지시가 내려오기를 또 기다렸다. 도대체 언제 침대에 누워 쉴 수 있을까 답답하기만 했지만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되어 다행히 베트남 직원들은 격리 장소까지 태워주었고 입사하려는 회사 대표님이 기다리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새벽 3시가 되어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까지 마중 나와 주신 대표님 얼굴을 뵈니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묵으려고 했던 호텔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을 거부했다. 나는 집에서 나온 지 22시간이 지나서 녹초가 된 상태였다. 대표님은 어디엔가 전화를 하시더니 이내 친구분이 운영하시는 호텔에 데려가 주셨다. 나는 샤워를 하고 뉴스를 보며 하루 종일 굶었던 허기를 채우려 컵라면 2개를 허겁지겁 먹어댔다. 24시간을 뜬 눈으로 지내보니 하루가 너무 길다. 


처음으로 격리라는 걸 하게 됐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시설 격리가 아니라 호텔 자가격리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2주치의 격리 비용을 모두 처리해 줘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 편히 푹 잘 수 있었다. 격리해보니 2주란 기간이 참 긴 시간이더라. 매일 배달시켜먹고 입국 전에 미술학원에서 잠깐 배웠던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며 매일 뉴스를 보며 늘어만 가는 코로나 확진자를 체크했다. 대표님은 매일 저녁에 동기와 나를 불러서 치킨과 맥주를 사주셨고 그 고마움에 우리는 새벽 내내 대표의 술주정을 듣고 있어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니 대표님은 멀리 출장을 떠나시고 격리를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러 온다던 메디컬 스태프가 오지 않아서 조심스레 동네 구경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근처 스타벅스도 가보고 필리핀 친구도 사귀었다. 살면서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이 잘 없었는데 말 그대로 자유를 만끽했다. 이런 격리 생활이라면 평생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가 첫 격리였고 앞으로 또 격리할 일이 왕왕 생길 거라는 걸 상상조차 못하며 평화로운 격리 기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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