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자 Mar 15. 2022

7. 드디어 첫 출근

편애당하는 게 불편한 적은 처음이야

격리를 마치고 회사 지원으로 서비스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10평이 조금 안 되는 원룸에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지내기 편했다. 푸미흥 한인타운이라 주변에 먹거리도 많아서 퇴근 후에는 항상 테이크 아웃하여 집에서 밥을 먹었다. 출퇴근은 회사 차량으로 부사장님과 부사장님이 키우시는 포메라니안 두 마리와 함께 출근했다(참고로 사장님 베트남 와이프가 부사장님이다). 아마 이 회사의 최고 복지는 이 강아지들이 아닐까. 근무 중에도 회사에 뽈뽈 돌아다니는 귀여운 녀석들을 볼 수 있어서 칙칙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출근 1일 차


출근 첫날 사장님이 새 데스크탑을 마련해주셨다. 그런데 개발부로 입사한 나는 갑자기 영업부로 부서가 바뀌었다. 애초에 이 작은 회사에 업무가 나눠져 있기야 한건지 그냥 이것도 저것도 다 해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 말로는 같이 입사한 동기가 영업에 능력이 없어 보여서 나한테 영업을 맡기고 동기를 개발부에 넣었다고 한다. 음... 회사가 원래 이런 건가? 


일주일 전, 앞으로 거래할 다른 공장 법인장과 동기랑 셋이서 밤새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동기는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하다. 원래 그냥 내성적인 성향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거래처 법인장이 동기를 마음에 안 들어했고, 우리 회사 사장한테 동기가 영업하러 오면 거래를 안 할 거라며 내가 와야 거래를 할 거라고 하셨다. 게다가 당신이 보는 눈이 없는 건지 법인장은 사장님이 동기를 대체 왜 뽑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게 베트남이구나. 전혀 필터링이 없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들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들로 인해서 혼란스러운 점이 많다. 사회가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베트남이라 그런 건지... 아무튼 이날 거래처 법인장과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쌀국수 해장까지 마친 뒤 공항으로 가셨다. 영업은 원래 이런 일인 걸까.


출근 3일 차


호치민은 1년 내내 여름이다. 난 시원한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한국어가 가능한 부사장님에게 원자재 체크/결재, 서류 번역, 개발, 총무, 생산관리, ISO 등 대략적인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은 뒤 나는 북부에 새로 짓고 있는 공장으로 가게 될 예정이었다. 동기는 작업복을 입고 공장만 어슬렁거렸다. 어젯밤 대표님이 동기와 나를 불러서 한 시간가량 독백을 하셨다. 대표는 동기가 하는 대답을 다 맘에 안 들어하셨고, 그만두고 싶으면 수습기간 안에 언제든 말하라며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뒤 사장님은 동기를 보내고 나랑 둘이서 대화를 이어갔다. 사장님은 나를 편애하신다. 우리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 생각이냐고 물으시면서 회사를 좀 키워주길 바라셨다. 일개 신입한테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이 회사에서는 인재 채용도 발전도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회사가 구멍가게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답 대신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근무하길 바라시냐고 되물었다. 사장님은 여태 오랫동안 회사 경영을 하며 경력이 있는 사람만 채용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나만큼 똑똑하고 눈치 빠르며 눈썰미 있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을 들은 순간에야 기분이 좋았지만, 유능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든 중소기업에서 사장이 여태 직원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평균값인 내가 들어온 게 얼마나 희망찼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갑자기 베트남 입국 거부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