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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자 Dec 13. 2021

베트남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베트남 가기 전과 비교해보면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은 훨씬 더 커진 것 같다. 그때는 명목상 취업을 위해 베트남에 갔지만, 쉼이 필요해서 도망친 것이 아닐까 싶다. 취준을 해야 될 나이인 대학교 4학년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취업을 준비해야 되고, 취업을 하고 난 후에는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쳤다. 학교 다닐 때는 야생에 던져져 야수들에게 포위당한 느낌이었다면 베트남에서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닐 때는 코끼리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멈추면 코끼리에게 밟힐 것 같아 계속 뛸 수밖에 없었다. 아직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알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고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나 보다.


고등학생이 되면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교를 가고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 사회적인 압박이 존재한다.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청년들은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혹은 부모나 어른들이 알려주는 길을 걷는다. 나이가 들다 보면 뒤쳐진 것 같을 때가 있고, 나이에 걸맞은 일을 해야 될 것만 같은 불안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을 것이다. 적성이 무엇인지 빨리 찾아서 직업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 다행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적성을 찾을 때까지 직업을 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내 경우에는 회사에 앉아있으면 몸이 베베 꼬이고 교육을 받으며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것을 보고 내가 바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다. 내가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내 인생의 구원이라 믿었지만, 취업 후 회사가 주는 가치는 돈 말고는 없었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상황이 아닌 나는 억대 연봉이 아닌 월급의 가치는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던 첫 월급날 빼고는 실질적으로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 나는 회사를 오래 다니기 위해서는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내가 철부지에 책임감이 없는 어린애라고 말할 것이다. 나이 먹기도 두렵고 어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회사를 다닐 때의 우울감은 단순이 코로나 탓이라고, 다른 곳에 가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어느새 바뀌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후의 더 나은 삶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해보지 않고서 판단할 수 없다. 과거에는 이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내 삶에 좋은 선택이라 굳게 믿었지 않은가. 여담으로 주변 친구들이 퇴사하고 싶다는 말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말인 줄 알았지만,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면 아직 바뀌지 않아도 버틸만하다는 증거이지 싶다.


앞으로는 하기 싫은 일에서 도망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몸과 정신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소리친다면 살짝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시간을 쓰고 마음을 기울인 만큼 그것은 삶이 된다는 어느 작가님의 글을 보고 지금은 우선 하기 싫은 일을 내 삶에서 떨쳐버렸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지낸다. 덕분에 얼굴의 주름 한 줄을 지워낸 느낌이다. 퇴사한 지금은 모든 직장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아침마다 지나가는 수많은 출근러들의 차량을 보며 과거의 고통받던 내가 생각나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하며, 마음속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퇴사 후 3개월 동안은 자유를 만끽하며, 그동안 못 봤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읽고 싶었던 고전소설도 읽으며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동안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며 가지지 못한 것을 잡으려 애썼다면, 지금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 베트남에서의 2년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지 언정 내 가치관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서는 유의미한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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