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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치 Jan 20. 2024

기어가듯이

오늘의 숙취 (3)

요즘이 오히려 게으른 게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대학생활이라는 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정말, 대학생 때 많이 놀았다. 대학교 입시에서 해방되자마자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야말로 폭주했다. 


캠퍼스에는 예체능학과만 모여 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아도 예술가를 지망하는 사람뿐이다. 취업을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 학교로 올 이유가 없다. 다들 자기가 목표한 바를 이루고자 열심히였다. 하지만 그 열심히라는 일 중에는 음주도 포함이었다. 


지금은 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예술 좀 한다고 하면 술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대는 모습이 전형이었다. 특히나 문예창작학과는 더했다. 글 쓰는 사람들의 술과 담배 사랑은 예술대 전체에서도 유명했다. 과실은 언제나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캐비닛을 열어보면 어딘가에서는 소주 한 병은 꼭 있었다. (냉장고가 없었길 천만 다행이다)


특히 학기 초에는 새내기의 등장이라는 거대 이벤트, 한편으로는 벚꽃과 함께 피어나는 괜한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어딜 가나 술자리가 있었다. 금요일은 특히나 난리였다. 


그리고 그 기억에 남는 숙취는 항상 집으로 올라가는 토요일에 터지곤 했다.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는데 학과 선배방에서 마셨던 그날. 얼마나 마신지도 모르는 술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더 자야 하나? 속이 울렁거렸다. 원룸, 낡은 알루미늄 새시 문이었나? 그걸 조용히 열고서는 변기에 토를 했다. 처음에는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색이었는데, 이게 몇 번을 더 끌어올렸더니 검은색이 보였다. 머리는 무거웠다. 정신이 안들정도로 아팠다. 어쩌지? 다시 누을까?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선배가 보인다. 저 선배는 나보다 더 마셨던 거 같다. 조용히 나가자.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선배가 말한다. 가니? 네. 방에서 자고 가도 돼. 아닙니다. 올라가 봐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 조심히 가. 네. 선배와 나는 힘겹게 서로에게 인사를 나눴다. 현관문을 닫고 건물을 내려가는 데 한숨이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다. 


토요일. 경기도에 위치한 학교 캠퍼스는 주말만 되면 썰렁해진다. 아직 3월이었나?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다. 평일에는 넓은 교정을 돌아다니는 마을 버스도 있었다. 하지만 주말에는 마을버스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원룸촌은 학교 가장 안쪽,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학교 정문을 너머 15분은 걸어가야 한다. 


숙취로 고생하는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마치 순례길과 비슷했다. 걷는 발걸음마다 괴로웠다. 마땅히 쉴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해장도 못했는데 속은 뭘 더 토해내겠다는지 울렁거렸다. 덥지도 않은데 식은땀이 쏟아졌다. 다 왔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면 이제 겨우 반이나 왔을까. 입이 탄다. 자판기에서 뭐라도 뽑아서 마실까 했지만 그것마저도 토할까 봐 걱정이다. 거기다가 학교 정문을 지나치게 되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혹여나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아. 다신 이따구로 술을 마시나 봐라. 걸음걸음마다 다짐한다. 정문이다. 적어도 사분의 삼, 75%를 왔다. 시계를 봤다. 버스가 올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갈 수 있을까? 차 타는 저곳에 닿을 수 있을까? 뛰어야 하는데 뛸 수 없다. 모르겠다. 이쯤 되면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학교로 들어오는 정문까지 도로는 2차선이다. 그리고 살짝 경사가 있다. 한 20도 정도 될까? 걷는 지금 그 각도를 보고 있으면 그냥 굴러서 내려가고 싶다. 항상 집에 갈 때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다니던 당시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억새나 잡초만 무성했다. 


다 내려왔다. 이제 버스를 기다리면 된다. 뭐 어떻게든 될 것이다. 소매로 땀을 닦아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 죽겠다. 타지도 않았는데 빨리 내리고 싶다. 내려서 집에서 쉴 것이다. 깨지 않을 잠을 자고 싶다. 


버스가 왔다. 

아직도 숙취가 남아있다. 


다신 이렇게 마시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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