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치 Jan 29. 2024

늦은 홍대 거리

오늘의 숙취 (4)

왜 모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동기가 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친구를 불러다가 같이 술 먹는 걸 좋아한다. 아마 그날도 그렇게 모여서 마시는 날이었던 거 같다.


아내와 아직 연인이었을 때 아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이 예뻐 보이고 신기해 보였다. 때마침 폰도 바꿀 때가 되었다. 나름 게임 개발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인데 아이폰을 안 써볼 수는 없는 일.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아이폰을 구매했다.


갤럭시만 쓰다가 아이폰으로 넘어와보니 모든 게 신기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손에 닿는 느낌하며 메인 화면에서 보여주는 쨍한 화면. 그리고 나름 커플폰이라는 이름 모를 의미도 담았다. 매번 안드로이드 폰만 쓰다가 아이폰을 쓰게 되니까 세팅할 일이 많은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와 애플 생태계가 이렇게 다르구나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즐거웠다. 스마트폰도 새로 바꾸고, 와중에 동기친구에게 새로 산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자랑도 좀 했다. 친구가 사용했던 폰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즐거웠다.


왜 그 거리를 걸었던 걸까? 돌아가는 길이었을까? 약간은 쌀쌀했던 날이었던 거 같고, 홍대 정문에서 대로변으로 쭉 내려오는 길이었던 거 같다. 밤이 깊어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날. 무슨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손에 폰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많이 취했나? 계단을 올라가는 와중에 휘청했다. 빠른 반사신경 덕분에 큰 부상은 막았다. 손을 앞으로 뻗어서 넘어지는 몸을 지탱했다. 다행이다.


바삭? 짝? 정확한 소리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계단 모서리에서 내 몸을 지켜주고는 자신을 희생한 아이폰의 비명을 내 멋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비명 같다고 느꼈다. 말을 잃었다. 나를 보던 친구도 순간 말을 잃었다.


폰을 봤더니 화면이 깨진 거 말고는 문제가 없었다. 아, 망했다. 친구는 걱정을 하기보단 웃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래도 살아는 있다. 튼튼하네. 그러게, 그런데 나 이거 산 지 한 달도 안 된 거 같은데. 괜찮냐? 웃던 친구가 그제야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난 술에 취했다. 이미 깨진 건 돌이킬 수 없는 일.


뭐, 어쩔 수 없지! 난 아이폰이랑 안 맞나 보다! 호기롭게 떠들었다. 친구도 그제야 걱정을 풀고서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셨거나, 집에 돌아갔거나 그랬을 거다.


다음 날도 기억이 나진 않는다.

이후로 나는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기어가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