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술 빚는 사람을 꿈꿔본 적 있었다. 목표는 전통주였는데 어쩌다보니 배운 건 맥주였다. 내가 배울 때에는 국내 수제맥주산업이 막 생겨나고 있을 때였다. 맥주 양조를 배우는 과정은 뜻깊었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양조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맥주 양조에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비용 문제도 있었지만, 맥주 양조 공방에서 경험한 내 실력은 영 마땅찮았다. 맥주보다는 전통주가 더 주목받는 요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안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주류 산업 방향이 이렇고 저렇고는 마시는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이야기긴 하다. 그냥 매니아 영역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만드시는 양조사분들께는 무한 감사를 표한다. 양조사라는 일은 요리사나 바리스타와 또 다르게 엄청난 체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맥주 양조사는 더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동네 책방에서 상업 맥주 양조사를 만날 수 있다고 했을 때 앞 뒤 가릴 수 없었다. 당장 가봐야지.
양조사님은 맥주 양조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알려주시고는 오늘의 메인이었던 맥주 스타일 강의를 시작하셨다. 나는 스타일 강의가 이어질거라 생각은 못했는데.
사진으로 업로드한 이 다양한 맥주를 한 캔씩 돌파했다면 아마도 난 죽었겠지만 그래도 약 10ml 정도씩 나눠가면서 돌려 마셨다. 그날 맛 본 스타일 맥주는 약 19종으로 기억한다. 돈 내고 배울때도 이 정도로 마셨던가 싶긴 한데 (생각해보면 그 때 당시에는 캔맥주가 이렇게 다양하진 않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기록을 해나가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취해서 맛 구별이 힘들어졌다.
그래도 그날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술이 계속 들어가서?) 취하는 줄도 모르고 평소보다 더 마셨던 거 같다. 내가 믿는 여러 속설 중에 하나는 '기쁠때 마시는 술은 숙취도 없더라' 뭐 이런 거였는데.
개뿔, 그런 건 없다.
숙취는 그냥 숙취다.
맥주도 많이 마셨고(스타일 비교를 위해 남은 맥주를 긁어모아 마셨다), 들고 온 다른 술도 잘 마셨다. (괜찮습니다! 아직 마실만 합니다!) 다음 날 오전부터 행사가 있는데 나도 모르게 달렸더니 새벽에 아주 난리가 났다. 다음 날 행사가 있다면 숙취 약이라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게 없네?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죽겠네요. 새벽에 변기를 부여잡으며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하늘에 빌었다.
그렇게 새벽인지 아침인지 모를 날이 밝아왔다. 눈을 조금이라도 붙여야 했다. 어른은 함부로 약속을 펑크낼 수는 없다. 어디서 오실 지도 모를 분들이 오전부터 사무실에 오신다는 데 정신 차려야한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좋은 점은 콩나물 해장국이 있다는 거다. 정말로. 보약이다. 술에 취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산삼이요, 레드불이다.
먹으니 그래도 살겠다. 내 다신 호기롭게 마시지 않으리. 남들이 술 남기면 남기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 함부로 주량 쎄다고 어디가서 자랑하지 않기. 술은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족. 양조사 님이 알코올 도수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이게 이 이후에 음주 생활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공유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알코올 도수 7% 라는 건 주류 100ml 당 담겨있는 알코올 중량(7g)이다. 그렇다면 왜 고도주라 불리는 고량주나 소주보다 저도주인 맥주나 막걸리에 빠르게 취하는 지 설명이 가능해진다. 고도주는 도수가 높지만 (알코올 함량이 45% 라면 100ml 당 45g 이다) 독하기 때문에 적게 천천히 마신다. 물에 타지 않은, 흔히 말하는 '니트'로 먹을 때 샷 잔이 60ml. 그렇다면 한번에 27g 알코올을 섭취하는 셈이다. 그에 비하면 맥주를 예로 들어본다면 500ml 잔에 알코올 함량이 6% 된다면 한 캔에는 30g 알코올을 섭취하는 일. 심지어 맥주는 빠르고, 많이 마시니 2캔, 3캔 마시는 건 일도 아니다. 맥주 2캔이면 60g, 3캔이면 90g. 그것도 1~2시간 사이에 맥주는 빠르게 마신다. 빠르게 취한다.
그러니 알코올 량으로 주량을 파악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시는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론 다짐하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