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흔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정 Jan 28. 2024

숨은 엄마 찾기

네게 머문 마음

  정말 딱 한번 신었을 뿐이었다. 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산 신발이었고, 분명히 편하다고 했다. 늘 언니 것만 물려받는 둘째가 안쓰러워 별러서 사 준 운동화였다. 언니의 취향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에 쏙 드는 신발로 사 주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는 자기가 고른 신발을 딱 한 번 신고 나간 후 불편하다며 신발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신발은 고스란히 신발장에 잠들어 있었고 둘째는 오래 신어 해진 신발을 그대로 신고 나갔다. 주인을 잃은 신발은 신발장에 갇혀 바깥 공기를 그리워하는 듯했다.     

  

  신발장에 곤히 누운 새 신발이 안쓰러웠던 나는 그 신발을 현관 바닥에 놓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음 순서가 정해진 듯 내 발을 신발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나보다 한 치수 작은 신발이었기에 맞을 리는 없겠지만 새 신발이 꽤 예뻐 보여 그냥 한번 넣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맞춘 듯 내 발에 딱 맞는 게 아닌가! 발 볼은 작지만 길이는 긴 그 브랜드 신발의 주인은 바로 나였다. 신이 난 나는 당장 그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신발에게 시원한 바람을 쐬어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는 갑자기 방 정리를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쓰레기들을 방앞에 꺼내놓았다. 어디서 그렇게 나왔는지 딸이 내어놓은 비닐봉지 속에는 인형이며 열쇠고리, 각종 쓰레기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대로 버릴까 하다가 비닐봉지 안에 내 눈길이 닿았다. 그중에 여행지에서 샀던 열쇠고리 겸 동전 지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카롱 모양의 열쇠고리는 당장 쓸데는 없지만 예쁘기는 했다. 동그라미 모양의 파우치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네모 모양의 파우치를 갖고 있는 내게 동그란 파우치는 무척 신선해 보였다.      


  어느새 내 손에는 열쇠고리 하나와 파우치 하나가 들려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둘째의 손을 벗어나 새 주인인 나를 찾아온 물건들. 나는 그 두 가지 물건을 내 서랍에 고이 넣었다.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지만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가까운 곳으로 여행 갈 일이 생겼고 나는 새 주인이 된 기념으로 동그란 파우치에 비상약들을 넣어 여행 가방에 쑥 밀어넣었다. 괜히 뿌듯한 순간이었다.      


  워킹맘인 딸을 위해 손녀들을 봐주러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쓰지 않으려고 현관에 내놓은 물건들을 엄마는 하나하나 살펴본 후 챙겨가곤 했다. 가져간다고 해서 그 옷이나 물건을 바로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옷장 속 어딘가에 잘 보관하거나 씽크대 어딘가에 잘 안착시켜 놓는다. 내가 그 물건의 존재를 잊었을 즈음 엄마는 슬며시 그것들을 자신의 생활 속에 풀어놓는다. 내 것이었을 때 보다 훨씬 예쁜 낯익은 옷이며 물건들을 엄마 집에서 낯설게 만나곤 한다.      


  새 물건도 아닌데 내가 쓰다만 물건들을 자꾸 가져가는 엄마가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내가 쓰던 걸 가져가는 것이 지구에게는 좋지만 내게는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좋은 물건을 새로 사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들고, 뭔가 궁상맞아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즐겁게 물건을 가져가는 것 같았고 버릴 물건이 있으면 자기에게 물어보고 버리라는 당부까지 남기곤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나도 물건을 정리할 때면 엄마에게 연락하곤 한다. 옷이면 하나하나 다 입어보고 살펴본 후 본인의 마음에 드는 옷들을 가려낸다. 물건이라면 꼼꼼히 살펴보고 필요한지 아닌지를 가늠해 본 후 고이 모셔간다. 가끔 남편이 장모님께 새 물건을 사드리라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엄마와 나는 남편 몰래 은밀한 거래를 한다.     


  그랬던 내가 어느새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새 물건을 좋아하고 물건에 싫증을 잘 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새 물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물건을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딸들이 필요 없다고 내놓은 물건들을 하나라도 그냥 버리지 않는 내 모습에 꼭 엄마가 숨어있는 것 같다. 그것은 엄마와는 좀 다른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절약의 차원에서 나의 물건을 가져갔다면 나는 절약보다는 새로운 물건 찾기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여느 집 딸들처럼 엄마와 다르게 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나는 워킹맘이지만 엄마의 삶을 보며 전업주부의 삶도 좋다고 생각했다. 온 집에 반짝반짝 광이 나고 음식은 항상 온기를 품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동동거리는 나에 비해 엄마는 항상 여유있어 보였고 요리를 하고 집안을 예쁘게 가꾸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있어 보였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해 자신에게는 박하고 절약 정신이 강한 알뜰한 사람이라는 건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엄마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엄마와 달리 워킹맘이며 나 자신에게 쓰는 돈에 매우 후하다. 절약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은 내가 정한 기준 내에서 하고 산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숨어 있는 엄마의 모습을 많이 본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자란 내 딸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찾지 않을까 한다. 내 딸들도 자신의 모습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았을 때 지금의 내 마음같이 싫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좋은 것처럼 내 딸들도 내가 저희들의 엄마여서 좋기를 바란다.      


  딸이 방 정리할 날을 기다린다. 엄마의 모습을 한 내가, 내 모습을 한 딸의 물건들을 살핀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세 사람이 한 방에 모여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무 살의 우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