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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Jan 31. 2024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내게 머문 마음

  분명히 며칠 전까지도 텔레비전에서 그녀의 얼굴을 봤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서 부러웠었다. 나도 저 나이까지 저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도 늙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목소리가 생명인 가수들은 기력이 쇠하면서 노래를 못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가 가진 생물학적 숫자에 비해 너무나 짱짱한 목소리와 제스쳐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녀가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죽었다.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한 어느 연예인은 자신이 암에 걸려서 감사하다고 했다. 암은 갑작스런 이별 대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에 그렇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억울할 텐데 감사하다고 말하다니! 그런데 갑작스런 죽음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말도 온전히 동의할 순 없으나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 말고는 어떠한 것도 기약할 수 없나 보다.      


  부모님들이 70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또한 죽음이라는 것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가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하던 남편은 뜬금없이 죽음을 밥상에 올렸다. 엄마,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납골당에 모시면 되겠냐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말을 내일 날씨가 어떠냐고 묻듯 꺼냈다. 그러자 아버님은 내일 날씨에는 우산을 꼭 가져가야 한다는 당부를 하듯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화장 후 아무 산이나 가서 뿌리라고 하셨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죽은 경우는 아이들이 부모를 보고 싶어할 수 있으니 납골당을 하는 것이지 살 만큼 살다 죽는 경우는 다 필요 없다는 게 아버님의 지론이었다.      


  부자(父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아무 산에나 뼛가루를 뿌리는 건 불법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들이댔다. 아버님은 막무가내로 다 할 수 있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사후 재산상속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정확히 모르니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확인하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아는 변호사가 있냐고 물으셨지만 친구 중엔 변호사가 없었고 우리의 사사로운 일들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님을 밥상에서 깨달았다.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그것이 남겨진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사후 처리는 그저 화장을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닐 거다.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남겨질 분의 거취도 문제다. 돌아가신 후, 그분의 물건이나 기타 등등의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형제들 의견도 있을 것이기에 그들과도 수없이 의논해야 할 것이다. 그저 슬피 울다가 그분들을 가슴에 남긴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아버님이 화장 후 산에 뿌리라고 하시는 것에 반해 우리 엄마는 당신이 묻힐 자리를 고르고 싶어 하신다. 지금이라도 해가 잘 들고,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땅을 사고 싶어 하신다. 그곳에 작은 집도 하나 짓고 싶어 하신다. 집이 부담스러우면 요즘 유행하는 농막이라도 갖다 놓고 싶다신다. 그곳에서 주말이면 가족들이 모여 펜션처럼 놀기도 하고, 꽃도 심고 나무도 가꾸고 싶어 하신다. 그러다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당신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 우리가 함께 모여 놀던 그곳에 묻히고 싶다고 하신다.     


  아버님이 죽음을 ‘끝’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반면, 엄마는 ‘이어짐’에 주안점을 두는 느낌이다. 죽음은 끝이기에 어떠한 흔적도 남겨두지 않고 ‘공수래공수거’를 실천하고 싶은 아버님. 죽고 난 후에도 우리 곁에 머물러 있고 싶고 우리 또한 당신을 그리워해 주기를 바라는 엄마. 이렇든 저렇든 결정은 우리의 몫이라는게 함정이다. 결국 부모님의 죽음 이후에 대한 모든 것들이 우리 선택이니 마음대로 하겠다고 호기롭게 생각했다가 선택의 결과 또한 오롯이 우리가 짊어져야 한다는 게 마음을 짓누르기도 했다.     


  한동안은 죽음에 관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본격적인 우리의 문제로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재를 회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언젠가 닥칠 문제이기는 하나,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으면 했다. 조금씩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철저히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부고(訃告)를 접할 때면 죽음이 그 모습을 조금씩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싶으면서 정작 나의 죽음은 비현실적이고 오랜 시간 후의 일로 느껴져서 무심한 듯 떠올려 볼 때가 있다. 남편은 죽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에 뿌려지고 싶다고 했다. 죽어서도 남편과 같은 곳에 있고 싶지만 차가운 바다는 정말 원치 않는다. 나는 따뜻한 햇살이 드는 이름 모를 나무 아래 뿌려지고 싶다. 그렇게 된다면 거름이 되어 새잎이 태어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딸들이 가끔 나를 그리워해 줬으면 좋겠다. 축하받고 싶은 날, 위로받고 싶은 날 나를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지 못하더라도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일지 비혼의 1인 가구일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 나가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우리 부부가 모두 떠난 다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어줄 자매지간이 되었으면 한다.      


  방을 치우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양말을 세탁기에 넣지 않았다고 짜증을 낸다. 별것 아닐지도 모를 사소한 것으로도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하지만 삶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웃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 얼마나 찰나인지 알게 되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린다. 나무 아래 재가 되어 뿌려진 나를 본다. 누구에게나 올 그 순간이 분명 내게도 올 것이다.      

  오늘도 죽음을 떠올린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비로소 나무에 새 잎 하나가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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