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by 신혜정

“웃는 모습이 참 예쁘시네요!”


평생 동안 타인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 그 말을 일면식도 없는 카페 직원에게 듣게 되다니! 그것도 사십이 훌쩍 넘어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그날은 기미를 지우러 피부과에 가는 길이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간 날이었다. ‘예쁘다’라는 단어는 과연 내 것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그날 내가 정한 위시리스트는 한적한 오전 시간에 카페 가서 책 읽기였다. 오후에는 피부과가 예약되어 있었고 오전 시간은 여유로웠다.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동네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섰다. 좋아하던 커피를 끊고 나자 음료를 고를 때면 늘 고민을 하게 된다. 커피를 제외한 음료는 너무 달거나 혹은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 과당이 많이 들어가 칼로리가 높거나 집에서도 티백 하나 우려내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료를 큰돈 들여 마시는 느낌이다.

메뉴판 앞을 기웃거리자 직원이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미안한 마음에 웃어 보이자 직원이 대뜸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딱 봐도 20대였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그녀의 이목구비가 낱낱이 보이진 않았지만 젊음 그 자체로도 빛나고 있었다. 예쁘다는 말은 오히려 그녀의 것 같았다. 그녀에게서 가져온 말을 되돌려 주어야만 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그녀의 칭찬에 비하면 너무 흔한 고맙다는 말만 튀어나왔다.

엉겁결에 음료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음료가 나왔다고 벨이 울렸다. 음료와 냅킨, 물티슈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말이 아니라 그녀의 글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흰 바탕의 물티슈 포장지에는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는 친필 글이 쓰여 있었다. 파란색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쓴 것이 너무나 확실한 그녀의 문장. 흔하디 흔한 문장이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건넨 물티슈에는 D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그 카페의 직원들은 모두 닉네임이 있고 고유한 닉네임이 적힌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D인가 보았다. 그녀의 닉네임이 적힌, 내겐 특별하기만 한 물티슈를 찍어 SNS 스토리에 올리기까지 했다. 그날, 그 순간 우리가 나눈 다정함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나는 고객이고 그녀는 카페의 점원이니 더 많은 고객 유치를 위한 판매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내 경험이 너무 많다. 동네에 있는 그 카페를 몇 년간 다녔지만 내게 이런 문장을 선물해 준 이는 단연코 없었다. 불친절했던 건 아니지만 그저 음료를 주고받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그녀의 친필 문장이 담긴 물티슈도 보여주었다. 나는 아마도 그녀의 닉네임이 D인가 보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딸이 그건 닉네임이 아니라 웃는 모양의 이모티 콘이라고 했다. 똑바로 그리지 않고 옆으로 눕혀 그려서 그런 거라며 친히 물티슈를 돌려서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웃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나타났다.

처음엔 그런 이모티 콘의 뜻도 모른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가 아닌 그녀의 마음을 떠올리자 이모티 콘까지 그려 준 그녀의 다정이 더 정성스럽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그 카페에 갈 때마다 D와 재회할 수 있을까 싶어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하지만 그날의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또 알아낸다고 한들 이제 와서 어떤 말을 전하기엔 너무 늦었다. 대신 카페에 갈 때마다 그날의 온도를 떠올리곤 한다. 그녀가 내게 건네던 따스함, 물티슈에 담긴 문장의 온도. 그리고 별것 아니라면 아닐 수 있는 이 작은 몇 마디 말들이 갖는 큰 힘에 대해.

그날 이후 나는 어쩌면 내가 정말 예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설사 그 다정에 극히 낮은 농도의 진심이 녹아 있었다 할지라도 완벽한 거짓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인정을 받았기에 내가 예쁘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기분이었다. 낯선 이에게서 전해져 온 짧은 말이 나의 자존감을 소폭 상승시켰다.

나에게는 여전히 D로 남아있는 그녀는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설사 카페를 찾는 다른 사람에게 오늘도 똑같은 문장을 선사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 다정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니까.

그녀의 글씨가 적힌 물티슈가 아직도 내 책상 위에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책상 위에 다시 앉는 순간마다 D가 나를 향해 외친다. 즐거운 하루 되라고. 그녀의 다정은 유통기한도 없이, 그때의 온도 그대로 내게 남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서 옮아와 내게서 싹을 틔운 다정의 등을 조용히 밀 것이다. 내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다정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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