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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글쟁이 Jul 14. 2021

KLM 아니고 우리 비행기 타는 거예요

실수 하나에 반전된 분위기

암스테르담에 4박 5일 일정으로 비행 갔을 때의 일이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비행도 아니었고, 아는 승무원도 없었기에 혼자서 하루를 보냈다. 물론 아주 즐겁게, 사진도 찍고 마켓도 다녀오고 감자튀김에 맥주도 한잔 하면서 혼자 하는 짧은 여행을 알차게 채웠다.


하지만 한 달을 계속 혼자 다니다 보니 그 좋던 텐션도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사진 찍고 다닐 사람이 있었으면 하기도 했고, 맥주도 같이 마셔줬으면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유럽여행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암스테르담 동행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같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자는 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4살이 어린 친구였는데, 군대 전역한 후에 유학길에 올랐다가,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암스테르담은 그 마지막 여행지이자, 한국행 비행기의 출발지였다.


점심시간 이후에 만난 우리는 운하를 몇 바퀴를 돌며 사진을 찍었고, 조금은 지친 발걸음을 달래러 펍으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사이치고는 꽤나 많은 대화가 오갔다. 취업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유럽에서 취업을 할 생각으로 공부를 해왔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그였다.


자리는 길어졌다. 맥주도 몇 잔을 내리 비워냈다. 무거운 표정으로 걱정을 잔뜩 늘어놓다가 갑자기 그가 물었다.


“형은 근데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일 때문에 해외 나오셨다고 했는데 부러워서요!”


처음 만난 나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놨는데,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전 승무원이에요. 이번 비행이 암스테르담이었구요.”


“우와! 제가 대한항공을 탔으면 더 좋았을 텐데, KLM이라서 아쉽네요.”


비행기 시간을 물었다.  뒤에 예약 확인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내일 만나겠네요? 하하”


항공편수와 시간이 나와 있는 확인서 밑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operated by Koreanair]


오랜 전에 예약한 항공편이라 미처 확인도 하지 못했고, 유럽으로 들어갈 때는 대한항공을 타지 않았기에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무거웠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유쾌한 해프닝 덕분에 반전됐고, 마지막 한 잔을 기분 좋게 마시며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탑승시간이 되자, 웃으며 들어오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고생한다며 한 손에는 초콜릿을 들고 말이다.


사실 전날의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틀에 박힌 응원의 말도, 다 잘될 거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잘 들어주는 일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만 어떤 계기가 만들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계기는 참 우습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항공권 덕분에 만들어졌고,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취업을 해버린 그 친구는, 그때 형한테 왜 그런 이야기까지 했는지 모르겠다며 또 한 번 웃으면서 술잔을 채웠다.


어쩌면 작은 실수나 착각이, 우리의 삶을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조언이나 충고 따위가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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