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추억하는 도시
신트라의 바람을, 지금, 여기로 가져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7월 말, 한 여름의 절정으로 치닫았던 그때에도
신트라의 바람은 인색하지 않았고, 서늘하기까지 했다.
바람은 언덕 위의 예쁜 성을 보러 오르느라 혹시나 솟았을 땀을 식혀주었고
언덕길 어딘가에 떨어뜨린 성의 입장권을 내 눈앞에 실어다 주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왕들의 여름궁전이었다는 페나성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예뻤다.
색색의 타일과 벽돌로 꾸며진 성 안에는 왕과 왕비의 만찬이 지금 막 시작하려는 듯
식탁 위 세팅은 정갈하고도 화려했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제 막 여행 떠난 주인의 방을
깨끗이 쓸고 닦은 하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작은 생활소품 하나하나가 방마다 가득 찬 미술품들이 방문객의 온기를 받아 빛나고 있었다.
서울의 경복궁과 창덕궁, 덕수궁을 거닐며
이 아름다운 장소는 왜 이리 구슬픈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건축과 문양, 의미를 지닌 정원, 궁궐을 지키는 잡상들, 기품 있는 나무와
아름다운 후원, 문 너머 문이 보여주는 신비함.
이 모든 아름다움의 끝에 느껴지는 감정은 고즈넉함을 넘어선 쓸쓸함이었다. 외국의 화려한 성을 보면서 느껴지지 않았던 그 감정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순간 어렴풋이 와닿았다.
그 아름다운 공간은 대부분이 텅 비어 생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창문 없이 높고 넓은 공간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적막과 외로움을 얘기하고 있었다.
깃들인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세월에 흘러가버린 한 때 고귀한 이의 미망으로 남았다.
신트라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곳에만 며칠을 머물며 찬찬히 둘러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바람은 고난과 위로를 동시에 주었고 굽이 굽이 산길은 어지러우면서도 황홀했다.
성을 내려와 험한 버스에 흔들려 어느 바닷가에 닿았다. 호카곶까지 가려했는데, 시간이 늦어 그곳에 닿진 못했다. 중간 지점인 Cascade까지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광장의 테이블에 앉아 포르투갈의 전통 음식이라는 돼지고기 샌드위치를 먹는 일이었다. 바람 부는 바닷가엔, '곤조'라는 (정확히는 라고 기억되는)
밝고 활기찬 남자가 있었다. 그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스낵과 음료를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모래바람에도 입은 늘 함박웃음으로 크게 벌리고 있었고 목소리는 활기차고 높았다.
그날, 태양이 꽤나 뜨거웠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의 웃음이 태양보다 더 환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의 왜곡일지라도, 대서양을 바라보는 땅의 끝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곤조를, 아주 가끔은 생각하곤 한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만 말이다.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잔잔한 파도를 지켜보았다.
아마도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있고 싶었지만, 뉘엿뉘엿 해가 기울며 바람은 더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차 시간도 임박해 왔다. 험한 것이 길인지 운전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한참을 흔들린 후,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예쁘다기보단 낯선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고 앞자리엔 창밖 노을을 바라보는 남자와 그 옆모습을 하염없는 눈길로 쫓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늦은 저녁을 먹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친구와 이별을 고했다.
여름이 다가오면, 혹은 여름의 절정일 때면 나는 신트라의 그날이 바람이 생각난다.
#포르투갈의그날
#여름이면떠오르는설레임
#여름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