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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경 Mar 08. 2022

시들어가는 꽃

오늘은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가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창가에 둔 꽃다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일러스트 페어에서 받은 꽃다발들이었다.

꽃 선물을 오랜만에 받아봐서 이 예쁜 것들을 어떻게 오래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우선 물에 담그고 해를 마주 보고 있게 두었는데, 오늘 가까이에서 보니 시들어가는 꽃다발이 몇 개 보였다. 시들어 버린 꽃다발들은 더 이상 물을 먹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물에서 빼내어 포장지를 분리하고 말리면 예쁘겠다싶은 꽃들을 창가에 올려두었다. '언젠가는 버리겠지만'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말라가는 꽃다발을 정리하고 남아있던 마지막 꽃다발을 그릇에서 잠깐 빼내어 냄새를 맡았는데 여전히 풀냄새와 향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 유쾌한 순간을 찾는 것이 어려웠는데, 꽃다발을 들어 향기를 맡는 순간 몸이 따뜻해져 오면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유쾌하고 마음이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향기가 나는 촉촉한 꽃과 그 향을 맡아 기분이 좋은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예쁜 조명 아래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는 창가로 다시 가져갔다.

문득 창 밖 야경 사이로 조금씩 말라가는 예쁜 꽃이 나의 연애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조금씩 마르고 말라가다 어느새 바짝 말라버린다면 나는 이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이 머금고 있던 향기로 인해 행복할 수 있었던 순간은 생명력을 잃고 기억 속에만 남겨지겠지. 결국엔 없어질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켰고, 언젠가 나는 그것들을 추억하게 되겠지.

나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향기를 맡고 싶어 말라가는 꽃다발을 다시 물이 찰방찰방한 그릇 위로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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